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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08. 2020

내 인생의 첫 오마카세

한 번은 써 볼 만한 7만 원

 누구나 한 번은 오마카세에 대해 듣고,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다 보니 과연 인터넷의 후기만 보고 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그 때문에 여태까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학교 선배가 오마카세 마니아라는 걸 알게 됐다. 선배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오마카세 사진을 올렸고, 거기서 주는 초밥이 정말 <미스터 초밥왕>에 나오는 초밥처럼 생겼다는 걸 확인하게 된 후 나도 첫 오마카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나는 7만 원짜리 오마카세에 도전했는데, 워낙 고가다 보니 (오마카세 중에서는 보통의 가격대인 것 같다. 비싼 것은 20만 원을 넘는다.) 가기 전에 예약부터 얼마나 꼼꼼히 했는지 모른다. 무려 한 달 전에 전화를 해서 예약했는데, 이게 얼마나 이례적이었으면 식당에서 "저희는 한 달 전에 예약은 받지 않는데요?"라고 했을 정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예약을 해 주기는 하셨다.) 어쨌거나 예약시간에 초밥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첫 오마카세를 앞두고 무척 설레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널찍한 공간에 안쪽에는 주방이, 그리고 그 바깥으로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도착해 있었고 주방장님이 두 분 이쪽으로 앉으시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셨다. 그렇게 앉고 보니 디너 1부에 12명 예약이 가득 찬 것이었고 모두가 제시간에 도착한 것이었다. 모든 예약자가 같은 시간에 시작하는 식사, 오마카세는 처음부터 참 느낌이 색달랐다.

 주방장님은 "열두 분 식사 진행하겠습니다."라고 외쳤고 그와 동시에 손놀림이 빨라졌다. 생선살을 능숙하게 발라냈고, 주방 안쪽의 사람들은 밥(샤리라고 부른다)과 얼음 따위를 가져오며 보조했다. 

 이 날의 메뉴는 토마토 가지 수프, 난반쯔케 등의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본격적인 초밥으로 이어졌는데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 수프 위에 얹힌 가지를 맛있게 먹을 정도로 요리 자체의 맛이 아주 뛰어났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는 역시 초밥. 초밥은 혹돔-줄무늬 전갱이-국방 대합조개-대게살-전갱이-금태-단새우-참치등쪽살-참치 중 뱃살-고등어-우니-바닷장어 순서로 나왔는데 개수로만 12개다.

 그렇다면 과연 그동안 먹었던 스시와 차원이 달랐는가? 나는 단호히 그렇다고 말한다. 오마카세와 보통 초밥집의 차이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재료가 흔치 않다. 보통 초밥집에서 먹는 것들은 모두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어, 생새우, 초새우, 계란말이, 광어, 연어, 문어, 조개 등이다. 그런데 전갱이, 대게살, 고등어, 금태 같은 종류는 어지간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둘째, 하나하나의 질이 다르다. 보통 초밥집에서도 고등어 초밥을 만들 순 있지만 오마카세에서 나오는 것과는 일단 모양부터 명확하게 다르다. <미스터 초밥왕> 마니아인 내가 항상 초밥을 먹을 때 의문을 가졌던 게 바로 왜 모양이 다른가 하는 것이었는데 오마카세에서 나오는 초밥은 모두 만화 속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하게 생겼다. 그만큼 좋은 재료를 써서 예쁘게 모양을 잡아줘야 만화 같은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양뿐만 아니라 맛도 다르다. 나는 여태까지 조개 초밥을 먹고서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퍽퍽하고 질긴 맛만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스터 초밥왕>에선 늘 그렇게 조개 초밥이 육즙이 풍부하고 어떻다며 늘 찬양을 해대기에 대체 어떤 조개에서 저런 맛이 날까 궁금했었다. 오마카세에서 먹은 국방대합조개는 어떤 생선살보다도 부드러웠고 씹을수록 진한 바다향이 났다. 우니처럼 농밀하게 입안을 채우는 맛은 아니지만 상큼하게 한 번 씻어주고 가는 바닷바람이라고 할까? 나는 비로소 만화에서 찬양한 조개 초밥이 이런 맛에 가깝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위의 두 가지 차이점 때문에 나는 오마카세에 7만 원 정도는 충분히 쓸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단순하게 계산을 해도 보통 초밥집에서 세트메뉴 이외에 우니라든가 다른 초밥을 시키면 2점에 1만 원 정도를 받는데 그렇게 치면 10점만 골라도 5만 원이 추가된다. 그러느니 7만 원을 내고 좋은 재료로 정성껏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초밥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 본 오마카세의 만족도는 정말 별 다섯 개를 주고도 모자랄 정도로 높았다. 물론 매일 이런 호사를 누릴 필요는 없다. 아무리 맛있는 크림 파스타라도 땀 뻘뻘 흘린 한여름 오후에 먹으면 맛이 없지만 그때 인스턴트 냉면만 먹어도 훨씬 맛난 것처럼 음식에도 때와 장소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초밥을 좋아한다면 가끔은 자신을 위해 과감하게 몇만 원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맛만 있는 게 아니라 짠돌이이자 가성비충인 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으니 정말 가치 있는 식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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