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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ug 03. 2020

마음의 가난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스팸전화가 올 시간은 아니라 받았더니 싼타페 차주가 맞으시냐고 물어본다. 싸늘했다. 보통 이렇게 갑자기 차주는 찾는 경우는 두 가지다.

 1. 주차된 차를 박거나 긁었을 경우.

 2. 다른 차랑 겹쳐서 차량 이동이 필요한 경우.

 그러나 내 차는 이중주차를 할 만한 곳에 있진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내 차를 박거나 긁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차와 도로 연석처럼 무겁고 큰 대리석 사이(원래는 차량 통행을 막기 위해 배치된 것)를 지나가려다 리어카가 차와 대리석 사이에 끼어버렸다. 어떻게든 그 사이를 비집고 나가려던 것을 지나가던 사람이 저러다 차 긁겠다 싶어 말렸고,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 그 광경을 보고 대리석을 조금 멀리 밀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리어카를 빼내고 보니 이미 내 차에는 상처가 났더라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차를 확인하러 가는데 한숨이 푹푹 나왔다. 어째 하루가 평온하게 지나가나 싶더니 이렇게 또 사건을 던져주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보상을 받아야 하나? 아니면 그냥 보내드려야 하나? 내 물건인데 굳이 그냥 보내드릴 필요가 있을까? 잠시 생각하다 그냥 현장에 가서 되는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현장에 가니 내게 전화를 주신 분과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전화를 하신 분은 의외로 어린 학생이었다. 스물 남짓 되었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빼내려 하는 걸 보았고 또 리어카를 빼낸 뒤 내 차에 흠집이 생긴 걸 목격한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에 손주가 온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그런 사실을 짐작하고 나선 학생에게 고마운 마음부터 들었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이 밤중에 그냥 지나가도 될 일을 이렇게 전화까지 해 주다니. 나는 할아버지에게 눈길을 돌렸다.


 할아버지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계셨다. 눈이 크고 턱이 앞으로 비죽 나와 있었다. 워낙 사지를 흔들고 계셔서 헌팅턴 무도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고령이시니 헌팅턴 무도병은 아니겠지만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차는 번호판 옆으로 찍힌 자국이 생겼는데 은색 차에 검은 흠집이 생겼으니 눈에 잘 띄는 데다 컴파운드로 문질러 처리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흠집을 손끝으로 만지는 중에도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할아버지께 일하다 다른 차를 잘못 건드리면 큰돈을 물어내야 될 수 있으니 앞으로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보내드렸다. 학생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이리되었다며 두 번 정도 사과를 하고 리어카를 끌며 떠나가셨다. 모두 가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했다. 차야 뭐 타다 보면 이리 찍히고 저리 찍히는 물건 아닌가.


 다른 곳으로 차를 옮겨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른 편의점 앞에서 다시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폐타이어와 폐지 따위를 주워 열심히 리어카에 싣고 계셨다. 


 예전에 돈이 없는 사람은 사귈 수 있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사귈 수 없다는 누군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마음이 가난한 게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었다.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토라지고 화내는 게 마음이 가난한 것일까? 아니면 매사 자기는 안될 거라며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게 마음이 가난한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마 마음이 가난한 범주에 들 것이다. 실은 나는 어느 정도 내 마음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잘 토라지고, 쉽게 비관적으로 변하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도 오늘은 내 마음에 작은 변화 하나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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