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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ug 19. 2020

고려대 배지와 나의 꿈

 무더운 날이지만 아침에 3km 달리기를 하고 왔다. 내 책 <최후의 다이어트>에도 썼지만 5km 달리기는 너무 힘들고 그렇다고 달리기를 안 하자니 나이 들어가면서 심폐기능이 떨어질 것이 걱정되고. 그래서 하게 된 것이 나에게 딱 적당한 강도인 3km 달리기다.

 오늘은 달리기를 하며 하나의 말을 반복해서 외웠다.

나는 44살에 100억 부자가 될 것이다.

 이 말을 백번 넘게 반복했다. 사실 이 백번 반복하기는 최근에 읽은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 <선물주는산타의 주식투자시크릿>이라는 책인데 가치투자로 100억 이상의 재산을 일구었다는 사람이 썼다. 저자는 이지카운터라는 앱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매일 백번 이상 말했다고 한다. 저자가 믿기로는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매일 갈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꿈이겠느냐고. 

 이런 이야기가 <주식투자시크릿>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한 15년 전쯤인가 유행했던 <시크릿>이 이러한 종류의 책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꿈이 이뤄진다고 믿으면 이뤄진다는 그 말을 듣고 당시 나는 코웃음을 쳤었다. 

 '3년 뒤에 천억 벌게 해 주세요.'를 믿기만 하면 돈이 생기겠어? 절대 안 되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뭣하러 책으로 쓰고 사람들은 그걸 읽는담.

 당시 내 생각은 이랬었고 <시크릿>은 상자 어딘가로 사라졌다.


 고등학교 때 나는 교복 상의 왼쪽 주머니 위에 고려대학교 배지를 달고 다녔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그림이 있는 그 배지를 달고 다닌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호랑이가 멋져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땐가 2학년 때 서울의 대학교들을 방문하는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당시 고려대학교 기념품점에서 배지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내 기억에 연세대에서는 기념품점을 가지 않았거나 배지가 없었다.) 그래서 멋으로 달고 다녔는데 이걸 달고 다니니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배지를 달았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너 고려대 목표로 하는 거야?"라며 호기심과 응원을 동시에 보내온 것이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SKY에 갈 성적이 된다면 고려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었는데 1학년 1학기에는 SKY에 미치지 못했던 성적이 점점 오르더니 3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는 서울대 공과대학에 안정적으로 들어갈 성적이 되어 있었다. 이미 여름방학 중에 한의대에 합격해서 원서는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한의대에 합격한 후 친구들이 기운을 받아가겠다며 내 문제집 같은 것들을 마구 가져갔는데(말 그대로 사물함을 털어서 마구 가져갔다) 그중에 고려대 배지를 탐내는 친구가 엄청 많았었다. 오래돼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배지는 나를 아껴주신 선생님께 드렸던 것 같다.

 결국 고려대 배지를 단 게 나를 한의대까지 이끌어준 것일까? 물론 내가 배지만 달고 다닌 게 아니라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지만 적어도 고려대 배지를 달고 다니려면 그에 부합하는 성적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생각이 나의 공부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와 습관을 만들었다면 <시크릿>에서 말하는 꿈에 대한 지향을 무시할 일도 아니다.

 12년 뒤에 100억 부자가 되겠다는 지금 나의 꿈은 어떻게 봐도 허황된 이야기에 가깝다. 하지만 15년 전 고려대 배지를 달던 나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나중에 한의대에 갈 줄 몰랐듯 내가 나중에는 100억이 아니라 1000억 부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꿈을 갖고, 그것을 잊지 않고, 늘 꿈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다. 오늘의 꿈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는 12년 뒤에 확인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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