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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05. 2020

황제라고 별반 달랐을까요?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독후감

 젊은이는 미래를 모르기에 삶을 일종의 서사적 모험으로 여기지. 오디세이처럼 낯선 바다와 미지의 섬을 여행하며, 자신의 힘을 실험하고 증명하고 그로써 자신의 불후를 발견하고 싶은 걸세. 중년이 되면 꿈꾸던 미래를 겪었기에 삶을 비극으로 본다네. 자신의 힘이 아무리 위대한들, 신이라는 이름의 시고와 자연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노인은 삶을 희극으로 볼 수 있네. -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지대넓얕 0>의 영향이다. 아우구스투스란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라는 뜻인데 이러한 칭호를 받아낸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했고, 아우구스투스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하자 <스토너>의 작가인 존 윌리엄스가 쓴 소설이 나왔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어야만 했던 것이다.

 소설 <아우구스투스>는 주로 편지글과 전보를 통해 내용을 전개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당하면서-모두가 아는 브루투스 너마저!의 카이사르가 맞다- 이야기는 시작되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우스가 양부의 복수를 위해 로마로 돌아가면서 황제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쉽게 제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종신 독재관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당했다는 것은 국가권력에 공백이 생긴 혼란기라는 의미다. 그런 혼란기에 아무리 카이사르의 양아들이라 하더라도 권력을 꽉 쥐고 있는 원로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힘을 내어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옥타비우스는 아그리파, 마이케나스 등의 절친들과 함께 여러 고난을 헤쳐나가며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고난 끝에 집정관이 된 옥타비우스, 그러니까 아우구스투스는 로마를 크게 번영시켰다. 안토니우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등과의 내전에서 승리해 더 이상 내전으로 로마인들이 피 흘리는 것을 막았고 밖으로 영토도 확장했으며 시민들에게 권력을 주고자 노력했다. 한마디로 국가의 번영이란 측면에서 아우구스투스는 대단히 유능한 황제였다.

 그렇다고 아우구스투스가 마냥 모든 것에 능력이 뛰어났고 가정도 화목했고 본인도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절대 그렇지 않다. 아우구스투스는 유년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아 아그리파와 함께 전투를 수행하던 시절 많이도 병을 앓았고 그중 몇 차례는 주변에서 진심으로 이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죽을 거라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또 자신의 딸인 율리아를 정치적 목적으로만 혼인을 시켜 큰 원망을 샀고, 나중에는 율리아가 정적과 간통하고 반란을 획책하는 바람에 유배까지 보내야 했다. 이러한 율리아와의 갈등이 율리아와 아우구스투스가 주고받은 편지, 그리고 율리아가 유배지에서 쓴 일기를 통해 잘 드러나는데 황제의 딸로 살며 정략 도구로 이용당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 절절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바로는 아우구스투스의 가장 큰 장점은 침착한 성품이다. 그는 양부가 살해당했을 때도 경거망동하지 않았고, 안토니우스와 섹스투스 같은 정적들이 적의를 드러내도 침착하게 대처했다. 그의 국경 확장도 어디까지나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쳐 나아갔으며 내정도 단숨에 변화하기보다 천천히 내실을 쌓았다. 누가 뭐래도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한 다음 그것에만 집중하는 삶을 산 것이다. 어떻게 보면 냉혈한이라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현자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에 여러 책을 읽으며 내가 공통적으로 받는 메시지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을 하되 결과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과가 내 생각보다 좋으면 감사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가 하기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늘에도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에 풍파가 많다고 너무 불평하지 말고 그저 할 일을 하자. 그것이 언젠가 늙어 죽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며, 그렇게 100년이란 세월을 쌓고서 죽음을 목전에 두면 내 운명에 충실했노라-아우구스투스는 박수를 쳐달라 했지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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