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Oct 22. 2020

"3년째 허리가 똑같이 아파요."

 얼마 전에 입원한 한 환자(여, 55세)는 허리가 영 좋지 않다. 반복해서 침을 놓지만 맞을 때 잠시 괜찮을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통을 호소한다. 급기야 오늘은 이렇게 고백한다.


 병원 5군데를 돌아다니며 시술을 2번이나 받았는데 허리가 3년째 똑같이 아파요. 안 낫는 거죠?


 환자는 자기 나름 할 만큼 다 했는데 통증이 전혀 줄지 않았으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3년이나 되었으니 나을 거라는 희망이 바닥나 가는 듯했다. 나는 환자의 심정을 이해하지만-물론 머리로만- 그렇다고 "맞습니다. 이제 포기하세요."라고 하는 것도 절대 옳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고통받는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 때문이 아니라 끝났다고 하기에는 더 해 볼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일선 한의사로서 요통 환자를 접하면 대개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1. 급히 수술을 해야 할 적응증인지 확인하고, 수술 적응증이 아니라면 치료를 시작한다.

 2. 침, 부항, 뜸, 한약 등 한의사로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치료한다.

 3. 급성 요통의 경우: 빠르면 하루, 늦어도 일주일 이내에 통증의 50~100%가 줄어든다. 그 상태에서 치료를 종결하기도 하고 환자 본인이 스스로 발길을 끊기도 한다.

 4. 만성 요통의 경우: 2주 이내에 30% 이상의 통증을 호전시키는 것(혹은 관절 가동범위를 늘리거나 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여 치료한다. 2~4주의 치료에도 반응이 없을 경우 통상적인 요통 치료가 아닌 다른 치료를 시도하거나 타 병원에서 진료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여기서 수술 적응증이라 함은 세 가지가 있다.

 1. 척추신경근 다발이 심하게 눌려 대소변 문제가 생기는 경우.

 2. 다리의 근육마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보통 족하수(foot drop)가 나타나는데 이 경우 1~2주의 침 치료를 통해 좋아지기도 하며, 바로 수술을 권하지는 않는다. 대개 4주 이상의 치료에도 호전이 없을 경우 수술 적응증이 된다.

 3. 3~4개월간 허리'시술'을 비롯하여 여러 비수술적 치료를 했는데도 통증이 극심한 경우.


 상기 환자는 올해 8월에 경막외 신경성형술, 그 후 일주일 뒤에 디스크 감압술을 받았다. 그러나 조금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매일 밤 병실에서 홀로 울고 있다고 내게 고백을 할 정도였다. 2회의 시술, 수백 회의 침 치료, 그리고 중간에 복용했던 졸피뎀과 트라마돌 등 수많은 양약들. 한 환자의 고통 앞에서 이 모든 것은 무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의료인으로서 좌절스럽다는 말 이외에는 내 기분을 적절히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다.


 물론 환자는 수술 적응증의 3번에 해당한다. 이 경우 당연히 수술을 권하지만 문제는 환자에게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추간판 탈출증 수술은 절대 가벼운 수술이 아니다. 그리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호전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비용도 많이 들다 보니 환자는 적지 않은 비용+수술이 잘못될 것에 대한 두려움+수술 후 그대로일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수술을 꺼리는 것이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가기 때문에 수술을 강권할 수는 없다.

(추간판 탈출증 수술 과정은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029760&cid=67205&categoryId=67206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수술을 제외하고서 지속되는 만성 통증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물론 여전히 침 치료이지만-어깨 통증, 반복되는 팔꿈치 통증 등 각종 사지 통증 환자에서 분절에 해당하는 척추 신경 가지의 지배를 받는 척추 주위 근육의 침 치료만으로도 증상 호전과 재발률 감소가 된다는 몇몇 증례와 보고들이 있다- 환자의 생각을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 부위에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통증 관련 구조의 변형으로 통증 신호가 증폭되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처음 통증이 10이었다가 3으로 줄어들었는데 통증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몸에서 통증 신호를 잘못 해석하게 되어 그대로 통증은 10으로 느끼는 상태다.

 또한 만성통증 환자는 우울감을 느끼고, 우울감은 통증을 증폭시킨다. 아프니까 우울하고 우울하니 더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악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항우울제가 통증치료제로 활용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선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하고-긍정적인 사고는 반복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의사는 함부로 비관적인 결과를 단정하기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주입해야 한다.


 항상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질환과 증상은 환자 혼자만 제대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환자의 증상에 제대로 공감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눈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어깨, 손목, 허리인데-그리고 CT와 MRI 촬영을 해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환자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짜증을 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본 사람은 대부분 알지 않는가. 하루에도 수만 번씩 바뀌는 내 기분만큼이나 내가 느끼는 통증을 정확히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어쨌든 나는 이 환자를 낫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볼 테고, 실제로 낫고 말고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란다. 그것은 그저 통증을 느끼는 인간에 대한 같은 인간으로서의 작은 연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쉬운 듯 어려운 가구공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