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Nov 03. 2020

선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드라마

드라마 <나의 아저씨> 감상문

 파울로 코엘료가 <나의 아저씨>를 정주행 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47년생 브라질 아저씨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드라마 어디가 재미있었던 걸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도 드라마를 보았다.

 사실 파울로 코엘료가 언급하기 이전에도 <나의 아저씨>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아주 극혐하는 드라마라는 거였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제목을 통해 어린 여자애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내용인가 보다 생각했고, 만약 그런 맥락에서 여성의 인권을 폄하하는 내용이 있다면 비판받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그런 이유로 <나의 아저씨>를 비판하는 것은 어떤 창작물의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아닌가 싶다.

 <나의 아저씨> 포스터에는 '흔한 남자의 특별한 이름'이라는 부재가 붙어있다. 주인공 박동훈은 흔한 남자다. 물론 대기업 부장이 흔한 직위는 아니지만 그의 주변에도 잘 나가다가 정리해고 혹은 이른 퇴직 후 동네 아저씨가 되어버린 이들 천지다. 그러니 박동훈도 흔한 남자로 쳐줄 수 있다. 박동훈은 대학 동창과 결혼했고, 아이 하나가 있지만 공부를 위해 보냈고, 두 명의 형제가 더 있으며, 늙은 어머니를 가끔 찾아뵙는 흔한 남자다.

 하지만 그에겐 '특별한' 이름도 있다. 바로 끝간 데 모를 선함이다. 박동훈은 어머니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아파도 말을 하지 않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형과 동생에게도 늘 신경 쓰이는 동생이자 형이다. 형제들의 생활고 때문에 늘 돈이 들어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래서 무서운 동생이자 형이다. 극은 이 선함이 이지안(아이유 분)에게 전해지면서 진행된다.

 이지안은 불행한 여자다. 부모가 남긴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고, 할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달동네 단칸방에서 월세 살이 하면서 안간힘을 쓴다. 친절을 베푼 사람도 있었지만 지안의 과거를 알게 되면 떠나가고, 그래서 지안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못하는, 손도 내밀지 못하는 가엾은 존재가 된다. 거친 풍파가 몰아치는 세상에서 홀로 두 주먹 쥐고 살아가는 적수공권 인생이다.

 처음엔 단지 회사의 부장-파견직 사이지만 이지안은 박동훈과 엮이며 점점 변하게 된다. 24시간 그의 사생활을 도청하며 흔한 남자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가 끝간 데 없이 선하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잘해주려 애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지안은 항상 질문한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요?

 선한 박동훈의 대답은 특별하지 않다. 아는 사람이니까, 나랑 엮인 사람이니까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말한다. 이지안은 점점 박동훈에게 빠져든다.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은 장면이 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고 살지 않았던 지안이 처음으로 타인에게 '괜찮은 사람', '엄청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쓰는 장면이다. 박동훈도 아마 이때 가장 큰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박동훈의 선함이 이지안의 마음을 열었고, 이제 이지안은 세상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을 '20대 여자애가 찌질한 40대 남자에게 반했다는 억지설정'이라고 욕하는 게 정상일까? 나는 '어른이 보호받아야 할 아이를 돌보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이지안이 박동훈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보다 존경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말로 하자면 "사랑해요"보다는 "좋아해요"라고나 할까.

 <나의 아저씨>에는 박동훈-이지안의 관계 외에도 소소한 재미가 많다. 다른 '아저씨'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감독하다가 말아먹고 주저앉은 동훈의 동생 기훈, 잘 나가다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사업하다 싹 날려먹은 동훈의 형 상훈 두 형제도 매력적인 캐릭터다. 아마 그 매력은 동훈과 마찬가지로 '그래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될 수 있으면 도움을 주고 살아야지' 하는 태도를 가진 데서 나오는 것일 테다.

 처음에 삼 형제가(특히 맏형 상훈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걱정하며 "동훈이 너마저 회사 잘리면 엄마 장례식 쓸쓸하다"라고 걱정하는 장면이 굉장히 낯설었다. 살아계신 부모의 장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정도 금기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머지 두 형제도 그런 이야길 왜 꺼내냐며 타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례식에 대한 상훈의 걱정은 진심이다. 그는 꼭 장례식이 성대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게 유쾌한 이야기가 아닌 줄 알면서도 자꾸 꺼내는 것이다. 그의 어쩔 수 없는 아저씨 같은 면이랄까.


 드라마 속 이지안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박동훈이 잘되길 내내 빌었다.

 드라마 속 박동훈이 그랬던 것처럼 이지안이 잘되기 또한 내내 빌었다.

 파울로 코엘료를 비롯하여 <나의 아저씨>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 같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이 드라마를 좋아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늘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그런 나에게 <나의 아저씨>는 참 힐링이 되는 드라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3년째 허리가 똑같이 아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