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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15. 2020

간이나 신장질환자가 한약 먹어도 될까?

무조건적으로 좋은 한약도 나쁜 한약도 없어

 오늘 치료를 위해 입원하신 한 환자분은 만성 콩팥병 5기라고 하시며 "한약을 먹고 싶은데 안 되겠지? 내과에서는 먹지 말라고 하더라고."라고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간이 좋지 않아 한약을 복용하지 않겠다는 환자분도 계셨죠.

 한의사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겪는 일인데요, 간이나 신장질환자는 한약을 복용할 수 없는 걸까요?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한약의 종류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의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적인 <방약합편>에 실린 처방 개수만 거의 500가지입니다. 이 500가지 한약이 전부 간이나 신장에 안 좋을까요? 그렇다면 한약을 복용한 모든 사람이 이미 간독성으로 입원했을 것입니다. 

 일단 중요한 전제는 무턱대고 한약이 간이나 신장에 안 좋다는 문장 자체가 틀렸다는 겁니다. 수천 가지나 되는 한약 중에서 대체 어떤 처방을 말하는 것일까요?

 양약에도 항우울제, 제산제, 진통제, 스테로이드 등 많은 종류가 있고 그중에서도 스테로이드는 강력하게 염증을 억누르다 보니 전신 면역체계가 무너져 전신 감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당뇨환자는 당뇨 합병증이 생기기 쉽죠. 그렇다고 "당뇨 있으면 양약 먹으면 안 된다"는 문장이 진실이 될 수 있나요? 양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그중에는 혈당을 조절해주는 약도 있는데 모든 양약을 싸잡아 당뇨에 안 좋다고 하는 것은 무식한 일이죠. 사실상 "간이 안 좋은 사람은 한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문장도 그만큼 무식한 소리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물론 한약, 그리고 한약재 중에는 간수치를 높일 위험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약재로 황금이라는 약재가 그렇습니다. 황금은 뛰어난 항염증, 항알레르기, 항산화, 항바이러스 작용 등을 가지고 있어 한의사가 애용하는 약재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간 보호 작용도 가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간 독성을 일으키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간독성 기전은 황금의 skullcap diterpenoid에 의한 것으로, 이 성분이 CYP3A4에 의해 활성 중간대사체로 변화되어 독성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간의 글루타치온(glutathione)이 활성 중간대사체를 제거하며, 글루타치온 농도의 감소로 독성이 발현됩니다. 따라서 황금이 들어가는 약을 먹을 때는 어느 정도 주의가 필요하겠죠.


 그런 반면 한약 중에는 간수치를 낮추고 간염을 치료하는 데 뛰어난 효과를 보이는 약도 있습니다. 

 경희대 한방병원장을 역임한 김병운 한의사는 인진이 들어간 생간건비탕이라는 처방을 만들었는데요, 이 처방은 간염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냥 가벼운 초기 간염만 치료하는 처방이 아니라 복수를 동반한 간경변 환자를 치료한 사례도 있을 정도로 효과가 아주 뛰어나죠.

 이런 약을 두고도 한약이(앞서 말했듯이 한약은 무려 수천 가지나 되지만) 간에 안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요?


 신장질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한약은 콩팥병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다른 한약은 호전시킬 수 있죠. 마치 어떤 양약은 콩팥병을 악화시킬 수 있지만 다른 양약은 호전시킬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방병원의 실제 사례 중에는 귤피전원이나 위령탕 등의 처방을 사용해 만성 신부전을 호전시킨 경우들이 있는데요, 이처럼 한약도 충분히 신장질환 치료를 위해 쓰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치료 경과의 관찰입니다. 간수치도 그렇고, BUN이나 크레아티닌 수치도 그렇고, 간이나 신장질환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약물 부작용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욱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중증의 간질환 환자는 음식을 통해서도 간수치가 오를 수 있으니 무척 당연한 일입니다.

 담당 한의사가 혈액검사 등을 통해 꼼꼼하게 관리만 한다면 간이나 신장이 안 좋다고 해서 지레 겁을 먹고 한약을 통한 치료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양약만으로는 겪지 못했던 호전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세히 상담할 수 있는 한의사가 있고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장비가 있는 병의원에 다니고 있다면 한 번 이야기 나누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한 문헌:

 https://www.kmcric.com/knowledge/inlife/view_inlife/22807?cat=11&page=2

https://scienceon.kisti.re.kr/commons/util/originalView.do?cn=JAKO200727742023471&dbt=JAKO&koi=KISTI1.1003%2FJNL.JAKO200727742023471

https://scienceon.kisti.re.kr/commons/util/originalView.do?cn=JAKO200403037039336&dbt=JAKO&koi=KISTI1.1003%2FJNL.JAKO20040303703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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