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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an 21. 2021

끝없는 질문은 나를 강하게 하리니

 어떤 환자는 의사를 당황하게 한다. 끝없는 질문을 통해서.

 환자의 주소(주로 호소하는 증상)는 무릎 통증인데 궁금한 것은 한도 끝도 없다.

 

 선생님, 손가락 끝부분이 트는 건 왜 그래요?

 선생님, 제 혀가 남들보다 약간 파란 것 같은데 왜 그래요?

 선생님, 어젯밤 열 시에 머리가 살짝 아팠는데 왜 그래요?


 의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시시콜콜한 부분에 대해선 연구를 하지 않는다. 손가락 피부 끝부분이 왜 트는지, 왜 혀의 색깔이 미묘하게 다른지(크게 다르면 문제가 되겠지만), 왜 밤 열 시에 살짝 머리가 아픈지를 연구하진 않는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 의사도 모르고, 박사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의사가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맞겠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으니 말이다. 당장 크게 아픈 허리와 무릎의 병인(병의 원인)을 찾고 올바르게 치료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저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을 리가.

 그래서 이런 환자의 끝없는 질문에 의사는 세 가지 대응을 보일 수 있다.

 첫째, 회피하기. 그냥 대답을 안 하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둘째, 무시하기. 이 경우에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을 꺼내지 않고 그냥 못 들은 척한다. 이때 왜 대답을 안 하냐고, 자기를 무시하는 거냐고 항의하고 화내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몇 변 반복되면 결국 자기가 입을 다물게 된다. '아, 이 사람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닫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대답해주기. 


 보통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의사들은 대답을 열심히 해 주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별 이상한 질문이 다 있다는 것과 거기에 모두 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으면서(혹은 진료 시간의 한계로 인해) 점점 회피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누구도 처음부터 불친절한 의사가 되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나 이래저래 시달리다 보면 아무래도 초심이란 것은 꺾이게 마련이다. 불친절한 의사를 나무랄 게 아니라 멀쩡하던 사람을 불친절하게 만든 현실을 탓해야 한다고나 할까.


 나는 아직까지는 회피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열심히 답을 해 주고 있다. 물론 내가 그 온갖 유형의 창의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의사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면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부분의 피부가 트는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한다 생각해보자. 피부가 트는 것은 물론 첫째로 건조함이 원인이 된다. 그렇다고 환자에게 "건조해서 그래요."라는 상식적인 답변을 날리면 대개는 만족하지 않는다. 왜 하필 손가락 '끝부분'만 트는지 '특별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답변을 살짝 더 꾸며준다.

 "보통 손가락 피부가 틀 때는 건조함이 원인이 되죠. 하지만 때로는 필수지방산 부족이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너무 잦은 손 씻기나 소독, 스마트폰 사용도 문제가 될 수 있죠. 하나하나 고쳐보는 게 필요한데, 우선 핸드크림을 좀 더 충분히 자주 발라볼까요?"

 경험상 이 정도 답변이면 환자들도 만족한다. 

 포인트는 이것이다.

 내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는 만큼은 알려드리겠다. 만약 답변이 충분치 못했다면 추가 질문을 해 달라. 그럼 내가 더 공부해보고 알려드리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맨날 똑같은 질병만 보고, 똑같은 환자만 보고, 똑같은 질문만 받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만해질 것이다. 독특하고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지는 환자들에 의해 우리는 더 공부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더 공부한다면 그만큼 더 나은 의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질문이 어떻게 나를 강하게 하지 않으랴. 

 질문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총알이 아니다. 결국 나를 죽이지 못할 지니, 모든 질문은 나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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