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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Feb 14. 2021

남을 위로할 자격

남을 위로하는 나의 내면

선생님, 제 다리의 떨림이 멈추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근육이 약해서일까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엄청 심해지는 것 같아요.

 

 정말 보기 드문 환자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떨림(한의사는 진전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환자가 있다. 중년여성인 이 환자는 최근 1년에 걸쳐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었고 어느 날부터 다리를 떨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 떠는 수준이 아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초속 30미터의 강풍이 부는 날 알몸으로 밖에 나가면 아마 이런 떨림이 발생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자의 떨림은 심했다.


 일단 내가 환자에게 짚어주는 것은 현재 상황이다.

 다리의 근육이 약하다고 해서 떨림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다. 사고나 질병으로 몸이 약해서 병원에 일 년씩 입원을 하는 환자의 경우에도 이런 심한 떨림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불안할 때 떨림이 심해지는 게 명확하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부분이다.


 무엇이 당신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주문한다.


 그 불안을 느낌으로써 안 좋은 문제나 상황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 이미 일어난 일은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불안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환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감히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인가

 

 내가 환자의 모든 상황을 알 때만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환자의 허락도 없이 빗장을 따고 집에 쳐들어가는 닥터 하우스가 되어야 할까?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뻔하디 뻔한 조언만 하는 것이 의료인으로서 올바른, 그리고 최선의 행위인가? 


 짧고 무거운 번뇌 끝에 내가 내리는 결론은 이러하다.

 뻔할 지언정 심지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자.

 사람에게는 남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하물며 의사와 일대일로 마주한 것도 아니고 옆에 간호조무사가 있고 다른 환자들이 있는 상황에서 속내를 터놓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나는 불안에 불안이 꼬리를 물어 환자의 정신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는 상황을 막아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선 뻔하디 뻔한 조언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내 마음속의 불안을 들키지 않고, 강한 확신을 주며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환자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불안을 보기 위해 애쓰며 힘주어 말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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