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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an 20. 2021

아픈 사람들이 제 몸을 돌보지 않는 이유

 오랜만에 한 환자분이 오셨다. 차트를 보니 작년 3월에 넘어져서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했고, 그 이후 발목이 낫지 않아 입원했었다.

 그런데 작년 12월에 또 넘어지셨다고 한다. 때문에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이번에는 신경성형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환자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그보다 좀 더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환자분께 여쭈었다.


 어머니, 댁이 혹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신가요? (그렇다고 하심)

 몇 층이세요? (3층이라고 하심)

 지금 허리 치료도 중요하지만 어머니 작년에 두 번이나 넘어지고 많이 힘드셨겠어요. 발목 수술도 하셨는데 허리까지. 또 넘어지시면 큰일나니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환자분, 정말 작년에 힘들었다고 하신다.

 나는 한 가지를 더 묻는다.


 그런데 어머니, 지금 허리와 발목 둘 다 체중을 줄이면 통증이 많이 덜어지실 거예요. 앞으로 평생을 놓고 생각하면 전체적으로 관절 질환이나 당뇨병 예방에 좋을 거고요. 올해 5% 정도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해서 다이어트를 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순전히 건강의 관점에서 꺼낸 말인데, 환자분이 생각도 못한 답을 하신다.


 내가 작년 1월에 딸을 잃었어. 그러고 나서 매일 술로 살아.

 순간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여러 군데가, 심하게 아픈 환자를 돌보다 보면 늘 머릿속에선 이런 의문이 솟아난다.


 이렇게 몸이 망가질 때까지 왜 내버려 두셨어요?


 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러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오늘 이야기한 이 환자분처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자기를 돌보는 것은 생각조차도 못하는 분도 있고, 되려 그런 슬픔과 분노를 자기 몸에 투사해 스스로에게 벌주듯 병을 키우는 사람도 있고,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반복되는 고된 육체노동의 고통을 애써 무시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

 술이 없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발목을 접질리지 않기 위해 똑바로 걷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하며, 또다시 허리를 다치지 않기 위해 계단을 조심해서 내려오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할까?

 그렇게 자식도 잃고 건강도 잃은 환자분을 두고, 나는 그분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해 드리진 못하기에 그저 손 한 번 잡아드릴 뿐이다. 우리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환자의 몸과 마음에 작은 휴식이나마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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