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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an 26. 2021

조현병 환자와 구속 증후군 환자와 교도소 수감자

소외된 사람들에 관한 책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저자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한 아들은 조현병을 앓다 자살했고, 한 아들도 성인이 된 뒤 조현병을 앓게 됐다.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차마 그 슬픔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두 아들이 어릴 때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병을 앓으며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또 가족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주된 내용은 정신병 치료의 과거와 현재다. 정신병을 정신병으로 올바르게 인지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귀신 들렸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 때까지 말이다),  정신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처음 나오기까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리고 그 약물이 결코 정신병 자체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저 환자를 멍한 상태로 만드는 것일 뿐이었다는 진실을 아는 데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이야기한다.

 원제가 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이다. 그렇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시장도 대기업 CEO도 정신병 환자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은 시민들의 표심을 움직일 정도로 강력한 존재도 아니고, 제약회사에 막대한 돈을 벌어다 줄 정도로 수가 많지도 않다. 또한 치료가 어렵고, 가족들도 대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철저히 소외된 정신질환자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 갇혀버린다. 의식은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은 아무것도 없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고 입은 저절로 벌어져 침이 질질 흘러내린다. 나를 돌보는 가족이 온다. 나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고 음식을 먹이지만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사표현도 할 수 없다. 아무런 선택권도 없다.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그들이 주는 옷을 입어야 하고 그들이 맞춘 온도에 맞춰 목욕해야 한다. 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그들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그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계에 부딪힌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네가 죽었어야 했어."

 

 어지간한 막장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소설을 써도 이렇게는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 현실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비극적이다. 

 구속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저자 마틴 피스토리우스가 말하는 '좌절'.

 그러나 그가 유명해진 것은 단지 병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 병에서 살아 돌아온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인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눈 깜빡임과 손가락 움직임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 수준에서 훈련을 통해 나중에는 혼자 손으로 음식을 먹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심지어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오체 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와 질병은 다르지만, 불편한 몸을 갖고도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해낸다는 점은 비슷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뭔가 고쳐주어야 할, 자선 프로젝트의 대상이거나 구석에서 평온하게 미소 지으며 앉아 있는 소리 없는 인간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나는 내 인생에 대한 권리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될까 봐 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과거는 지금도 내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마틴 피스토리우스 (지은이), 이유진 (옮긴이) > 중에서
눈사람 미역국

 보통 사람은 교도소에 가 볼 일이 없다. 본인이 죄를 짓지 않기도 하고, 주변에서도 범죄자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감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는 서울 동부 구치소의 코로나 이슈도 있었다. 수감자들은 자기들이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며 항의했고, 구치소 측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항변한 듯하다. 나는 수감자도 코로나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지금 시민들도 코로나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데다가 수감시설에 한계가 있다면 이미 죄를 지은 사람으로서 열악한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마 수감자 인권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교도소 측이 잘못했다 할 것이고, 이미 남에게 피해를 준 범죄자들이니 남들만큼의 보편적 인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수감자들을 동정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눈사람 미역국>의 저자는 교도소에 무려 세 번째 수감된 사람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부터 조금 망설였다. 굳이 내가 범죄자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래도 읽을 만한 내용이 있으니 출간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수감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책으로는 신영복 교수의 것 외에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저자가 고시반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된 이야기였다. 교도소에서 무언가를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셋째 누나가 지극정성으로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주어 도전했다고 하는데 저자의 유년 시절이 어떠했는지 몰라도 교도소를 세 번이나 갈 정도로 나쁜(이 부분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피해를 그리 줬으니 나쁜 사람이다.) 사람이 가족의 끝없는 관심과 격려를 통해 평생 해 본 적 없는 일에 도전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좋게 보이는 이야기만 실려 있지는 않다. 특히 서진 룸살롱 살인사건의 범인 중 하나를 큰 형님(장진석으로 추정된다)이라며 존경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닌데 존경한다는 게 나로서는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조직폭력배들만의 습성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나는 판사도 아니고 한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저승의 심판관도 아니다. 오직 독자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저자 이상덕 씨는 자기가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느낀 바를 '진솔하게' 잘 썼다. 그러나 바라건대, 이번에 출소하고 나면(이미 하셨을 수도 있다) 다시 수감되지 않도록, 교도소에서 생각한 바대로 새롭게 멋진 삶을 꾸리시기 바란다.

아까운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그동안 이곳에서 했던 다짐들은, 술 마시면서 이미 다 잊어버려 생각도 안 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또다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자기의 운명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면서 산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 < 눈사람 미역국 , 이상덕 (지은이), 박훈(에드몬도) (그림)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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