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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an 09. 2021

스트레스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몸에 무슨 짓을 하는가

로버트 새폴스키, <스트레스> 독후감

 스트레스, 스트레스. 암도 스트레스 때문이고, 치매도 스트레스 때문이고, 소화불량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스트레스를 '정신적 압박'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 스트레스가 정말 만병의 근원일까? 정말 스트레스가 그렇게 우리 몸에 안 좋을까? 로버트 새폴스키가 이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이 책은 1994년에 출시되었다. 사실 15년이 넘은 책이니 읽을 사람들은 어지간히 다 읽었으리라. 하지만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계속해서 이 책을 사고 또 읽을 것이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육체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몸에서 왜 영향을 주며,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위해선 위 그림 한 장만 이해하면 된다(물론 100%라는 의미는 아니며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다.) 

 우리 두개골의 정가운데쯤 위치한(그만큼 중요한 위치가 아닐까) 시상하부는 스트레스(육체적 고통도, 정신적 고통도 가능)를 받으면 CRH를 분비한다. CRH는 뇌하수체를 자극해 ACTH를 분비하게 하고, ACTH는 부신피질을 자극해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하게 한다.(그림에서는 코티솔로 나오지만 코티솔이 당질 코르티코이드계 호르몬이며, 일명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당질 코르티코이드의 분비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것이 곧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답이다.

 재밌게도 이 책의 원제는 <Why zebras don't get ulcers(왜 얼룩말은 궤양에 걸리지 않는가)>다. 사람들은 위궤양이니 십이지장궤양 따위를 달고 사는데 왜 얼룩말은 걸리지 않는가? 정확하게는 맨날 사자한테 쫓겨 다니는 얼룩말은 위궤양이 없는데, 왜 안락한 아파트에서 살며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현대인들은 위궤양을 달고 사는가? 그것은 스트레스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으로, 얼룩말은 사자가 자신을 쫓기 위해 도약하는 순간에만 에프네프린을 분비하는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내지만, 사람들은 하루 종일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걱정하며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밝히자면, 단 것에 대한 선택적 식욕증진으로 인해 살을 찌게 하는데 심지어 그 살이 복부에 축적되도록 하며,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올려 고혈압을 유발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에 걸리게 하며, 소화기의 혈액량을 줄여 위벽의 경색을 유발해 궤양을 유발하고, 해마에 미세 손상을 입혀 기억력이 나빠지게 한다. 이외에도 무수하게 하는 일이 많다! 이렇게 작용이 많다 보니 어지간한 병은 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소리를 해도 썩 틀리지 않은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스트레스를 모든 병의 원인으로 치부하고 스트레스만 해소하면 암도 낫는다는 식의 태도는 갖다 버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로운 듯한 당질 코르티코이드는 왜 있는 걸까? 그렇다면 뚱뚱한 사람에게서 지방을 흡입해 제거하듯이 부신피질을 제거해 버리면 안 될까? 그러면 스트레스로 인해 고혈압이나 당뇨에 걸릴 일도 없고 위궤양도 걸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당질 코르티코이드는 그 자체로는 나쁜 호르몬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의 일종으로 당연히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 나를 공격하는 일이 생기면 즉각적으로 몸에서 평소 쉴 때와는 다른 반응을 일으켜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래서 교감신경이 항진되고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분비하는 것이며 이때 순간적으로 근육의 운동능력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통증에 둔감해지고 면역 기능도 향상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스트레스 반응이 30분 이내의 짧은 시간 내에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문제이다. 어쩌다 한 번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일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는다면? 그것도 어떤 날은 듣고 어떤 날은 안 들어서 언제 잔소리를 들을지 불안해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런데 대출이 많아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는 초원에서 사자에게 잠시 쫓기다 도망치면 그뿐, 잡혀서 죽으면 그뿐인 얼룩말과는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스트레스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사는 자연인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산속으로 들어가야 할까? 만약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사람은 서로에게 끝없이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뜻으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만 나쁜 게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악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스트레스 자체를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잠깐 잠깐 마주치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해치지 않는다. 스트레스에 대해 일어나는 당질 코르티코이드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자에게서 벗어난 얼룩말이 더 이상 사자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동료와 장난치기를 즐기는 것처럼, 우리가 예측할 수 없고 다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괴로워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구분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짧게 말하면 '현재에 집중하자'가 되겠다. 식상하고 식상하다. 하지만 현재에 집중하고 살고 있는가? 당신은 오늘 같이 쉬는 토요일에도 '다음 주에 엄청 추우면 어떡하지? 장갑을 안 사놨는데' '내년에 코로나가 안 끝나서 해고당하면 어떡하지? 대출금이 많은데' '5년 뒤에 갑자기 부모님이 큰 병에 걸리면 어떡하지, 모아놓은 돈이 없는데' 같은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려 들지 말고,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계속해 상기하며 괴로워하지 말라. 보내줄 것은 보내주어라.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오래 살게 할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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