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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ug 11. 2021

멈출 수 없고 지속불가능한 발전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1081049101


기술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시대에 살다보니, 탄소 배출량이 많아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진다는 현상에 대해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하자고 한다.

하지만 기술은 인간이 지구를 망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기술 개발에 실패하면 과소비와 낭비에 익숙해진 인간은 그대로 멸망에 들어서는 것이다.

차라리 모든 사람에게 소비량을 제한하는 강압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운동화는 1년에 2켤레, 손목시계는 1년에 1개, 모자는 3년에 1개 하는 식으로 말이다. 예상되는 반응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이고, 하나는 '예상한 것보다 필수소비량이 더 필요하면 어떡할 거냐'다. 자유롭게 소비할 권리를 방조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다. 무제한적인 소비는 지구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악이다. 지금 우리는 악을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극심해져 모든 식물이 말라죽고 부산과 남해안이 바다에 잠기면 그 때쯤에는 소비를 제한해야 한다는 구호를 받아들이게 될까? 그리고 손목시계가 1년에 1개 이상 필요한지 아닌지는 일단 시행하고 따져봐도 될 일이다. 매일같이 무언가를 사고 처박아두는 것에 익숙해진 동물, 그것이 우리 추악한 인간이다.

그러나 단지 우리 개인의 도덕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자본주의와 기업이라는 커다란 배경이 있다. 소비를 줄이면 당장 기업부터 규모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실직자가 나올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까? 결국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을 유지해야 하고, 국가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지금의 소비문화를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이 무서워하는 것은 각종 환경단체의 시위가 아니라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높여준다 생각하기에 소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자본주의의 끝을 향해 달려가다 파멸하지 않을 수 없는, 피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필연적 파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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