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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14. 2021

인체의 영구 손상은 작은 방심에서 비롯한다

 며칠 전 친구가 내가 갔던 가장 높은 산이 몇 미터였는지 물었다. 나는 6088미터라고 답해주었다. 친구는 거기에 다녀와서 손발이 저리거나 시린 현상이 생기진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답하며 왜 그걸 묻는지 물어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는 후지산 등반을 간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산처럼 온후한 기후일 줄 알고 청바지에 바람막이만 입고 갔다가 몇 시간 동안이나 우박을 맞으며 등반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날이 추워지면 손발이 급격하게 차가워지고 손이 저리기도 한다고 했다. 이건 장시간 저체온증에 의한 말초혈관과 감각신경의 영구 손상인 것 같았다. 친구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갔을 뿐인데 거기서 평생 가는 손상을 입고 만 것이다.


 비록 내 손에 영구적인 손상은 없지만 사실 나도 작은 방심으로 인해 손가락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다. 와이나 포토시가 아니라 안나푸르나에서의 일이다. 당시 나 역시 고산등반에 무지해 다이소에서 산 5천 원짜리 장갑을 들고 등반에 임했었다. 저지대에선 유용하게 사용했지만 고도가 3천 미터에 가까워 갈 때쯤, 아침에 숙소를 나선 뒤 얼마 되지 않아 열 손가락에 칼로 에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셰르파를 소리쳐 부르자 달려오더니 곧바로 내 장갑을 벗겨 던지고 자신의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아프도록 비벼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비비자 통증이 줄더니 손가락의 색이 돌아왔다. 하마터면 급성 동상으로 손가락을 자를 뻔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과장 같은 이야기지만 히말라야 등반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게 이러한 급성 동상으로 인한 사고다. 내가 등반을 하던 시기에도 그보다 앞서 몇 주 전에 등반을 온 부부 중 여자 쪽이 동상에 걸려 손가락과 발가락 일부를 절단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뻔히 두 눈 뜨고 있으니 사고를 안 당할 것 같지만 실은 인간은 극한의 기후에는 그토록 유약한 동물인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의 고통과 그 연원에 관심이 없겠지만 내가 보는 환자군에서 통증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손상된 것이 회복되지 않거나 한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크게 상한 것이 평생 남는다. 스키를 타다가 다리가 부러지거나 복싱을 하다가 손목을 삔 사람 등 다양한 환자가 무려 10년, 심지어는 20년 전에 다친 곳이 아직도 아프다고 한다. 이는 환자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생긴 비가역적 손상은 어지간해서는 자연 회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매사 몸과 마음을 씀에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아주 작은 방심이 육체에 큰 손상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작은 욕심이나 분노가 평생 마음에-그것이 내 마음이든 남의 마음이든- 상처를 남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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