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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07. 2021

향수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야 할 책

히라야마 노리아키, <향의 과학> 독후감

 프루스트 현상은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하는 일을 말한다.


 나에게도 프루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냄새들이 있다. 갓 기계에서 튀어나온 뻥튀기 냄새를 맡으면 외할머니 가게와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가을과 겨울 새벽에 맡을 수 있는 차가운 냄새는 추석과 설날 때 찾아가던 친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한다. 이 냄새들은 시각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나의 기억을 불러오곤 한다. 종종 잊고 살지만, 후각은 중요한 감각 중 하나다.


 <향의 과학>은 현존하는 책 중 향기에 관한 가장 좋은 대중서다. 사람이 향을 맡게 되는 기전, 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향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발견되었는지, 어떻게 합성되고 있는지, 각종 유명한 향수들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등등 향기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Fragrance wheel

 향수를 애용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유용하게 본 정보는 향을 분류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Perfume wheel 혹은 Fragrance wheel이라고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 이 분류법은 숫자나 기호로 나누기 어려운 향수를 대략적으로 나누는 법이다. 플로랄, 프레쉬, 스파이스드, 우디 이렇게 네 개로 크게 나뉘며 그 안에서 세세한 분류가 이뤄진다.

 물론 하나의 향수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프레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우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향에 관한 주관적 감각은 일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분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며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분류법이 탄생한 것이다.

 

 나는 요즘 네롤리 포르토피노를 카피한 향수를 쓰고 있다. 톰포드의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완전히 같은 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저가에 판매되는 카피 향수이니만큼 분명 향이 다를 것이다. 보통 이런 카피 향수는 첫 향은 비슷할지 몰라도 향의 지속력, 그리고 잔향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오리지널을 갖고 있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여하튼 이 네롤리 포르토피노는 다른 블로그에 따르면 Woody로 분류되는 듯하다. 네롤리의 탑노트는 네롤리와 베르가못인데 네롤리는 비터 오렌지라는 식물의 꽃 부분을 증류해 만들며, 베르가못은 귤속의 잡종 재배 식물이다. 즉, 탑노트의 향 두 가지 모두 오렌지, 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카피 향수 역시 귤향과 다른 산뜻한 꽃냄새가 섞인 듯한 냄새가 나는데 이것이 Woody라기엔 좀 더 산뜻한 느낌이 있고, Floral이라고 할 정도로 화사하진 않아서 나는 개인적으로 Fresh 분류의 Citris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향을 맡는 일은 직접적으로 뇌의 변연계에 영향을 끼친다. 변연계는 많은 역할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감정조절이 가장 큰 역할이다. 그 말은 곧, 향기가 기분을 바꾸는 데에 지대한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화나는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의 냄새, 대형 서점에서의 청량하고 우아한 냄새, 애인에게서 풍기는 꽃향기 등을 맡고 기분이 확 바뀐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향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원래 후각이 사람에게 작용하는 과정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정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맡을 수 있는 자기만의 향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나는 자기 전에 베개에다 Woody 계열의 방향제를 뿌린다. 숲의 냄새가 나면 마치 캠핑을 온 것 같은 여유로운 기분으로 잠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꽃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화사한 Floral 계열의 향수를 뿌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향의 과학>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크로마토그래피라든가, 시스-헤테로의 분자 형태에 따른 향의 차이 등 화학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더욱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 향수를 좋아한다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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