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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08. 2021

의사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나카야마 유지로, <의사의 속마음>

 요즘 한의사 생활에 대한 일기를 모아 에세이집을 낼까 생각하는 중, 책을 팔러 들른 중고서점에서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보게 되었다. 나카야마 유지로의 <의사의 속마음>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 매력적인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책을 집어 돌아왔다.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어려운 내용은 없다.


 #1. 정말 솔직한 속마음을 썼는가?

 아무래도 이 책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진짜 솔직하게 썼느냐이다. 제목은 속마음이라고 써놓고 거짓말을 하면 아무 의미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될 테니 말이다.

 한의사로서-의사의 생활을 어느 정도 아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이 책의 저자는 아주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아주 완전하게 속마음을 다 밝힌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게 비판받을 정도는 아니다. 어떠한 사람도 자기 직업의 치부를 낱낱이 다 밝힐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한의사들은 TV에 나간 이후 자기 제품을 광고해 매출을 올린다'라고 기술했다고 치자.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굳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한의사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동료들에게 비난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에서 뭐든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문체를 구사하는 것이 좋은데, 그런 점에서 나카야마 유지로는 얼마나 솔직한 것이 적당한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책 속에서 의사의 봉급도 그런 식으로 밝히고 있는데, 봉직의의 경우 월 500~800이고 개원의의 경우 월 1000~2000이다 하는 식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누가 모를까? 나도 한의사의 월급을 이런 식으로 밝힐 수는 있다. 월 500~800이고, 개원의는 월 1000~3000이다. 


 #2. 재밌는 부분은?

 저자가 대장암 등의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이기 때문에 한의사와는 역시 다른 부분이 많다. 수술을 하기 전에 ppt까지 띄워가며 최대한 열심히 설명을 한다든가, 대학병원에서 진료 시에 환자의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등에 대한 것이 그렇다. 환자가 왜 대기를 오래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재밌는데, 저자는 '병원이 대기시간을 줄이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한다. 오래 기다리든 말든, 광고를 하든 말든 언제나 환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병원은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3. 우리나라 의사는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의사라고 다 착한 것도 아니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니 누군가 이런 책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사가 책을 쓰든 간에 리베이트와 대리수술 문제에서 완전하게 솔직한 답을 내놓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인천의 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에게 연봉 7500만 원을 주고 상습적으로 대리수술을 시킨 혐의가 뉴스로 보도되기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처럼, 눈 뜬 봉사처럼 대리수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사들도 그들만의 리그(생태계)가 있으니 혼자 나서서 "대리수술 강력 처벌해야 한다. 적발 시 면허 반드시 박탈하고 재발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자정은 그래서 의미 있고 중요하다. 꼭 밖에서 지적을 받아야만 바뀔 수 있다면 이미 그 생태계는 썩어 죽어가는 것이 아닌지? 앞으로 아마 수술실 CCTV 설치 등으로 인해 대리수술 문제는 조금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꼭 친척 중에 의사가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안심하고 수술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란다.


 #4.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

 암수술을 하는 의사고, 암환자 중 고령인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저자는 죽음과 접할 일이 많다. 환자에게 죽음에 대해서 고지해야 하는,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고령의 암환자에게 얼마의 치료비를 쓰면 좋을지, 달리 말해 목숨 값이 얼마가 적당할지 묻는다.

 당신은 70살이고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일 년에 2억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당신은 하겠는가? 만약 80살이라면 어떨까?

 저자의 말로는 이 문제에 관한 연구가 있고 결론이 있는데 5997만 원이 목숨 값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일 년에 5997만 원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대부분 연장을 택한다는 의미일 것이다.(제대로 이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미래에 대한 가정은 직접 닥치기 전엔 큰 의미가 없지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나는 70살에 말기암 판정을 받고, 치료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면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별다른 고통이 없고, 일 년에 6천만 원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돈이 허락하는 만큼은 연장을 할 것 같다. 나에겐 생명의 '길이'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세밀하게 실상을 밝히거나 진지한 주제를 논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사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인 것으로 결론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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