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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25. 2021

헛된 기대를 품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분."

1년의 병원 경영 끝에 오늘 내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내가 한의사가 되던 첫날부터 거창한 포부를 가지지는 않았다. 여타 갓 졸업한 한의사들이 그러하듯 모르는 게 많았고 두려움도 적당히 있었다. 잘 모르고 무서우니 공부는 그래도 열심히 했다. 공보의 때는 환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한 분 한 분 붙잡고 최대한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어깨 아픈 분이 오면 어깨 공부를 더 했고, 허리 아픈 분이 오면 허리 공부를 더 했다. 

 학생 때도 한의학이 모든 병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생각하진 않았다. 그리고 현실도 그러했다. 쉽게 낫는 병도 있지만 어려운 병도 많았고, 이론대로 되는 치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치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환자에게 너무 큰 희망을 주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 다음에 안 낫는 것과 "조금 치료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한 다음에 낫는 것. 환자들 중 전자는 사기고, 후자는 겸손한 혹은 실력 있는 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한 뒤 낫게 하지 못했더라도 그게 사기는 아니다. 나는 정말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달랐으며, 그걸 알기엔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나는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았고, 때문에 조금 더 예후를 비관적으로 말하게 되었다. 비관적이라는 말보단 현실적이라는 말이 더 적합할까.


 가끔 내가 너무 환자에게 솔직하기만 하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다. 그는 내가 조금은 환자에게 안 되는 것도 된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환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안 되는 건데 될 수 있다는 말 한마디를 의사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의사는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환자의 기분을 위한답시고 잘 될 거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면 환자는 예전보다 더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실망에서 비롯한 분노의 화살은 고스란히 의사가 받아내야 할 몫이 된다. 마음에 크나큰 여유가 있는 의사라면 모를까, 보통은 쉽지 않다. 


 나는 내 마음에 짐을 얹기 싫어 되는 것만 된다고 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부정확한 정보로 혼란을 주지 않으려 했고, 근거 없는 희망으로 인해 더 큰 절망이 자라나지 않게 하려 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에겐 융통성 없다 혹은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지만 한 명의 직원에게는 "적어도 없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그거면 되었다. 그것이 내가 바라고 그리던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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