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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05. 2021

25년 전 4인 가족이 살던 그 13평

 며칠 전 이사를 했다. 거모동에서 대야동으로 이사한 후 20개월 만의 일이다. 살던 집에 큰 불만은 없었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했다. 적당한 크기라 냉방을 하든 난방을 하든 별로 돈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에서 무척 가까워 지각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결정한 것은 짐이 불어난 탓이다. 대야동으로 이사를 올 때는 싼타페에 가득 채워 두 번만 왕복하면 될 정도였다. 심지어 침대 매트리스까지 스스로 실어날랐을 정도로 짐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개월 사이에 짐이 새끼라도 낳는지 계속해서 불어나는 바람에 마침내 5평 원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사 갈 집을 알아보았고, 13평 남짓한 빌라를 구해 마침내 옮기게 되었다.

 13평 빌라의 첫인상은 '넓다'는 거였다. 일단 방과 거실, 주방이 분리되어 있다는 자체가 10년 넘게 원룸에서 살아온 내겐 혁신이었다. 방에는 킹사이즈로 짐작되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고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있었다. 나는 살면서 킹사이즈 침대도, 소파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삿짐센터를 불러 원룸 이사를 하고 싶다 했고 사전에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으나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의 말은 달랐다.

 "이건 도저히 한 차로 다 못 실을 것 같은데요?"

 계약요금이 26만 원인데, 만약 한 번 더 옮기게 되면 추가로 14만 원의 요금이 발생한다고 했다. 나는 우선 크고 무거운 것 위주로 날라달라고 했고 그들은 침대와 책상을 비롯해 많은 짐을 차에 가득 실어 빌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옛 집에 들어간 나는 아연실색했다. 큰 가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짐이 남아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짐이 많았다.

 며칠 동안 옛집에서 남은 짐을 정리하며 나는 수백 번 같은 생각을 했다.

 '살면서 더 이상 짐을 늘리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단 한 명이 사는 집에서 이렇게 많은 짐이 나올 수가?!'

 '다음 이사할 때는 무조건 모든 짐을 실어달라고 할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모아야겠다.' 따위의 생각이었다.

 그렇다.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짐이었다. 나는 싼타페로 거의 예닐곱 번을 왕복하며 짐을 실어 날랐고, 결국 첫 이삿짐이 들어간 후 5일 후 새벽 4시에야 모든 짐의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정말 험난하고 끔찍한 여정이었지만 모든 것이 정리된 집의 모습은 마음에 쏙 들었다.

 새집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 애정을 가진 부분은 바로 거실 한 구석의 책 읽기 코너다. 구석에 책꽂이를 놓고 안에 있는 책은 표지 색깔별로 모았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하양, 검정 순이다. 그 앞에는 앉기 편한 캠핑의자를 놓았고 책을 읽다 잠시 올려둘 수 있게 작은 탁자도 놓았다. 우측에 있는 것은 자전거 행거다. 자전거를 높이 들어 올려 바닥 공간을 절약해주는 소중한 물건인데 가방도 같이 걸 수 있어서 실용성이 만점이다. 자전거 행거와 책꽂이의 사이에는 낚싯대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대부분 여기에 몰려있는 셈이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사가 끝난 후, 어머니와 통화를 하다 뜻밖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우리 가족이 25년 전 살던 주공아파트가 지금 내가 이사 온 빌라와 같은 크기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방이 두 개였지만 다소 크기가 작았고, 분명 전체적인 크기는 지금 빌라와 비슷한 것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새삼 충격을 받았는데, 무려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크기의 집에 나는 혼자서 짐을 가득 채워 넣고 있을 정도로 소유한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 소유는 곧 죄가 아닌지!

 분명 꼭 필요한 것들만 소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정말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25년 전보다는 물질적으로 정말 많이 풍족해진 것 같은데 어째서 아직도 마음이 예전보다 풍족하다는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함은 물질 속에 파묻힌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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