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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11. 2021

인생을 제멋대로 살아도 괜찮은 이유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가? 단일의 화가가 아니라면 화풍은 어떤가? 혹은 르네상스 같은 시대는? 그림에 대해 조예가 깊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화가나 그림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만약 없다면 <1페이지 미술 365(김영숙 지음)>을 읽어보기 바란다. 왜냐하면 미술에 관한 365가지 이야기(화가, 세계사, 작품 등)를 보다 보면 적어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쯤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세상사의 대부분이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세상만사가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하기 싫으면 않는 것이다. 슈퍼 컴퓨터에 '10억'이라는 항목과 '감옥', 그리고 '인간'이라는 항목을 넣으면 '75%의 인간은 10억을 주면 2년 동안 감옥에 갈 것이다'라는 계산식이 나올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잘 돌아가지 않는다. 왜냐, 앞서 말했듯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숫자뿐만 아니라 감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온 수많은 화풍(한 시대 미술의 유행)과 화가야말로 인구수만큼 존재하는 다양한 취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그림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며, 그림의 가치 또한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고갱의 그림이 백억 이라 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십만 원의 가치도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1페이지 미술 365>는 깊은 지식을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깊은 지식을 원하는 사람이 볼 만한 책은 서점의 별도 코너에 따로 꽂혀 있다. '전공서' 혹은 '전문서적'이라는 이름을 달고.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것은 교양이기 때문에 이 책으로도 차고 넘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나도 이 책을 모두 꼼꼼히 읽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겨 가며 눈에 띄는 제목이나 그림이 있을 때만 집중해서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좀 더 잘 알 수 있다. 취향이란 쉽게 말해 '아, 이런 그림이 내 눈을 잡아끄는구나'의 문제이니 말이다.

 나는 어릴 때 고흐를 많이 좋아했다. 그의 그림이 강렬한 색감으로 주의를 끌기도 했지만 스스로 귀를 잘라버렸다는 비극도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었다. 엄청 유명한 화가이며 그림도 비싸게 팔리지만 정작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다는 부분도 비극적인 느낌을 더 해 주었다. 그래서 파리를 여행할 때 설탕을 녹여 떨어뜨린 압생트를 마셨고, 자화상 앞에서 한참을 서서 그의 거친 붓터치를 감상했다.

 그런데 요즘은 에곤 실레가 더 좋다. 그의 그림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아, 에곤 실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넘치며 인물이 모두 가녀리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다. 길쭉길쭉하고 뻗은 손가락과 슬픔과 분노를 담은 눈망울을 볼 땐 나는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생전에 느꼈을 비애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자신의 마음을 담아 그렸고 그것이 아직도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기에 위대한 화가인 것이다.

 물론 다른 화가의 그림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는 단연 눈에 띄는 무서운 작품이며, 휘슬러의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 또한 처음 보았지만 색채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보티첼리의 <봄>은 전형적인 그리스 로마풍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봐도 너무나 화사하고 따뜻했고, 얀 반 에이크의 <남자의 초상>은 마치 사진 같아서 그림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였다.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곰곰이 돌이켜보면 결국 위대한 사람들은 인생을 제멋대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에곤 실레는 여동생을 누드모델로 삼아 근친상간 혐의를 받았고, 고흐는 귀를 잘라버렸고,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다 몸이 혹사당해 꼽추가 되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는 범주에서 에곤 실레에게 여동생과 거리를 두라 하고, 고흐에게 압생트를 그만 마시라 하고, 미켈란젤로에게 그림 그만 그리고 달리기를 하라고 했다면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전해오는 명작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고, 우리의 찬사를 듣지 못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자기 내키는 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뿐, 죽은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살아있는 동안에 남의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아서도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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