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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Feb 18. 2022

짜증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난다

 가끔 진료를 보다가 욱 할 때가 있다. 물론 의사는 환자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가 예수님이 아니고서야 왼뺨을 맞으면 경찰을 부르지 오른뺨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심찮게 나를 괴롭히는 것은 요구가 끝이 없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병원에서 환자에게 지켜주기를 원하는 것은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가 받고 싶은 것에 대해선 절대 양보가 없다. 핫팩을 수시로 갈아달라 하고, 공짜로 다른 치료를 추가해달라고 하는 게 보통의 양태다. 이럴 때 나는 간호조무사들에게 원칙을 지키며 친절하게 대응하되 선을 넘는 요구는 들어주지 말라 하고, 나 역시 그렇게 행동한다. 안 되는 것은 그냥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 된다고 거절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나는 깊이 심호흡을 하며 '화내 봐야 내 수명만 줄어든다'는 생각을 반복한다.

 그런데 오늘도 그런 상황이 있었는데 별로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냈다. 그러고 나서 저녁에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환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상황은 그대로였는데 내 마음이 변한 것이었다.

 며칠 전 우리 병원의 다른 원장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간 일을 쉬게 되셨다. 때문에 나는 혼자서 2인분을 하게 됐는데 집에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이럴 때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으면 언제 보여준단 말인가!'

 이런 우스운 마음을 먹으며 아침에 공진단까지 챙겨 먹고 평소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하루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원래 둘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는데도 싫증도 나지 않았고 환자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닥쳐온 고난을 나 홀로 온전히 받아내기로 마음을 먹어서, 이미 준비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동안 짜증 났던 것은 내 일인데도 남이 좀 해 주면 좋겠다는 헛된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결국 내 병원이니 모든 것을 내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 이런 것은 간호조무사가 해 주면 좋겠고, 이런 것은 부원장님이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사람이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매일 새롭게 다짐하고, 오늘도 내 일을 아주 잘 하겠노라 다짐하고, 공진단 챙겨 먹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면서 살면 일은 잘할 수 있겠지만 내구도가 정해져 있는 인간의 육체인데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저 타성에 젖어 매일 출근하기 싫다, 일하기 싫다는 말만(혹은 생각만) 반복하며 사는 것보다는 훨씬 기분도 좋고 일도 잘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그렇게 미라클 모닝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실천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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