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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ug 10. 2022

인생에도 한 번쯤 하한가 맞을 수 있잖아

 친구가 개인회생을 결정했다. 억대 빚에 20%에 가까운 이율을 끼고 2년간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지만 추심도 꽤 집요했던 모양이다. 불법추심 금지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친구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된 건 친구가 최근 반복해서 소액의 돈을 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빚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장인에게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을 왜 빌려달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속으로 친구가 요즘 고등학생들도 한다는 온라인 도박에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친구가 그런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서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인간은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0% 확률의 도박이라 해도 결국은 모든 걸 잃게 된다. 이런 당연한 진리를 몸소 겪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친구에게 이런 걸 묻는 것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걱정도 약간 되었지만, 묻지도 않고서 계속 의심하는 것보단 차라리 물어보고 부딪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친구는 내게 상세한 사정을 밝혀주었다. 올초에 개인회생을 신청했고 결정을 기다리는 중인데 원금+이자 갚고 변호사비, 생활비 등등 내려니 빠듯해서 내게 빌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엔 부끄러워 그냥 돈만 빌린 것이었다.

 나도 주식을 하다가 수천만 원을 잃었다. 천만 원 잃고서 그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금방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끌어다 덤벼 들었고 손실은 금세 이천, 삼천, 사천으로 불어났다. 매일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며칠 만에 다시 주식을 하다 돈을 잃어 내 밑바닥을 확인하곤 했다. 그때는 매일이 지옥 같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신뢰의 문제였다. 내가 이렇게나 나약하고 욕심 많고 어리석은 인간인지, 잃은 돈에 눈이 멀어 더 큰돈을 잃으며 나는 처절하게 느꼈다. 

 친구에게 말했다. 돈을 제대로 관리할 줄 모르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우연한 행운이 거액의 돈(실은 엄청나게 큰돈도 아니고 그래 봐야 일 년치 연봉 수준이다)을 쥐어 주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배운 것만으로도 인생에 큰 경험을 한 것이 아니겠냐고. 나는 진심으로 이러한 손실을 30대 초반에 입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은퇴 후 5억의 돈으로 주식을 해서 30%의 손실만 보아도 1억 5천만 원의 돈이 사라진다. 50%의 손실을 보면 2억 5천만 원이, 100%의 손실을 보면 5억이, 심지어는 신용 미수나 레버리지 선물투자로 원금보다 더 크게 잃으면 순식간에 수억의 빚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나이에는 더 이상 근로소득을 통해 빚을 청산할 길조차 없다. 하지만 30대는 다르다. 비록 한 때 잘못된 길로 갔을 지라도 몸만 건강하다면 인고의 시간을 거쳐 재기할 기회가 분명히 있다.

 그러다 문득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잘 나가는 종목도 루머가 돌거나 유상증자 등 악재로 한 번쯤 하한가 맞는 날이 있지 않냐고, 그러나 회사가 건실하다면 결국은 시간이 지나며 주가는 우상향 하게 되지 않냐고. 우리도 인생에 하한가 한 번 맞은 셈 치면 된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상향 해서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될 거라고 했다. 말하고 보니 꼭 내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독이는 말 같았다. 정말로 멀쩡한 회사도 때로는 주가에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건실하다면 반드시 회복한다. '긴 시간의 축 위에서'라는 조건 하에 말이다. 나도 장래에는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웃을 수 있도록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친구 역시 이 위기를 잘 넘기고 빠른 시일 안에 빚과 중독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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