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철수의 라디오캠프에 김연수 작가가 나왔다(이하 내용은 기억에 의존하나 부정확할 수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기타리스트가 꿈이었고, 그래서 악기를 연습해 수와정이라는 밴드를 결성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한 청취자가 수와정 시절의 사진을 배캠으로 보냈다. 그 사진을 배철수 DJ가 김연수 작가에게 보여주자 그는 첫마디에 이렇게 말했다.
와, 젊다
퇴근하면서 들은 잠깐의 라디오였고, 김연수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와 스스로의 글쓰기(ft. 반려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재밌게 들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의 옛 사진을 보고 젊다며 감탄하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혔다.
현대의 출판시장은 소수에 의해 독점된다. 김연수 작가가 의도적으로 소설시장을 독점했다는 뜻이 아니다. 미디어의 영향이 커지고 사람들이 책을 사기 전에 검색을 하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주 오래전에는 30%의 작가가 70%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10%의 작가가 90%의 시장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글을 접할 기회와 여유가 줄고 있고, 유명한 작가는 언제나 출판사에게 손해 보지 않을 마지노선을 그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 작가는 한국에서 성공한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스스로 말했듯 취재를 위해 나가사키에 6개월을 거주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비용을 자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작가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옛 사진을 보고서 진심으로 뱉은 한 마디가 "와, 젊다"라니. 나는 나이 든 이들에게 나이 듦이 얼마나 큰 상실감을 줄 수 있는지, 어제의 단 한 마디를 통해 가장 절실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젊은이가 가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지 않은 한 젊은이는 바닥으로부터 시작해 스스로 자신의 것을 쌓아 올려야만 한다. 중간에 흉흉한 일을 당하지 않는 한 대개는 0으로부터(혹은 마이너스 얼마로부터) 점점 숫자가 커지는 삶을 산다. 그리고 어느덧 크게 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부족했을지언정 젊고 건강했던 그날로 돌아가는 것일까.
인생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지언정 사람은 모두 언젠가 죽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소설을 썼든, 세게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었든 결국은 죽는다. 인생에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면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미국 드라마 <샌드맨>에는 영생을 부여받은 인간이 태어난 지 300~400년이 지난 후에도 죽는 것보단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은 그런 생물인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고양이, 강아지, 햄스터, 쥐, 심지어는 우리의 손에 의해 수많은 소, 돼지가 죽어가지만 어쨌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모든 형태의 죽음을 인식하기에 거부하고자 하는 존재. 그런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