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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Oct 11. 2023

왜 늘 피해자는 죽이기보다 죽기를 택하는가

학폭을 고발한 표예림 씨가 자살했다. 피해자는 도합 12년간 학교폭력을 당했다.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는 4명이며, 직업은 각각 육군 군무원, 미용사, 필라테스 강사, 미상이다. 총 4명 중 2명이 표예림 씨에게 명예훼손에 관한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하나, 표예림 씨는 직접 신상을 공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의 여지는 없다고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 나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있다. 일회성일 경우에는 용서하기 쉽고 무시해도 좋다. 그러나 반복적인 경우, 악의는 선명하며 내가 그것을 용서해야 할 당위성은 희미해진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신체적/심리적으로 중대한 위해를 가했다면 나는 그에게 적어도 같은 피해를 줄 것이다. 10대를 맞았다면 10대를 때릴 것이고, 나로 하여금 자살을 생각하게 했다면 차라리 상대를 죽인 후 나도 죽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당연한 반응 같지만, 학교폭력의 경우에 실제로는 피해자가 숨어 살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지, 가해자를 폭행하거나 죽이는 등 복수가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작년부터 숱하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전세 사기의 경우도 별반 다르진 않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대체 왜? 스스로를 죽여야 할 정도의 마음이 복수해야 할 가해자에겐 향하지 않는 것일까?


직접 이유를 물을 수는 없지만 추론하자면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하다.

첫째, 남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고운 심성의 소유자라서.

둘째, 복수 후에 나에게 닥칠 페널티(ex. 수감)와 그에 따른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서.

셋째, 복수 후에 다시 복수당할 수 있다, 즉, 복수의 굴레가 생길 것 같아서.

넷째, 복수를 하는 순간 상대가 악인이고 나는 선량한 피해자였던 시소가 거꾸로 기울기 때문.


이 외에도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가해자를 해치기보다 스스로를 해하는 결말을 맞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가해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반성하고 있을까?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눈에는 눈' 복수가 이뤄져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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