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밴드부 카페에는 매년 신입생의 자기소개글이 올라온다. 10년 전만 해도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가 그리 활성화되지 않아 대부분의 소식이 공유되던 카페는 항상 새 글이 있었는데 근래는 신입생 들어오는 시즌이 아니면 거의 새 글이 없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신입생 자기소개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출신 지역이고,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밴드다. 출신 지역이야 혹시나 내 고향에서 -혹은 내 모교에서- 온 후배가 있을까 해서고, 좋아하는 밴드를 보는 것은 요즘 트렌드를 알 수 있어서다. 내가 입학한 후 밑으로 한 4-5년 차까지는 그래도 아는 밴드가 더 많았는데 해가 가면 갈수록 모르는 밴드가 많아져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올해 신입생들이 좋아하는 밴드로 많이 꼽은 것은 LUCY다. 이름만 보았을 때는 여자 싱어가 아닐까 했는데 알고 보니 무려 4인조 남성 밴드다. 데뷔한 게 2020년이라고 하니 내가 전혀 모를 법도 하다. 2020년이면 코로나로 전 세계가 정신이 없었고, 나는 이직과 개원으로 인해 더욱 정신이 없었던 때다.
어떤 밴드인가 궁금해서 노래를 이것저것 들어보던 중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목의 길이도 낯설지만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 가사를 들어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사가 될 때 주어진 사명감으로 인해 죽지 못하고 기사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는 듯했다. 사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드러머인 내겐 이 곡의 경쾌한 리듬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못 죽는 기사와 비단 요람>의 드럼을 커버해 보았고, 오늘은 두 번째로 <개화>를 또 커버해 보았다. 커버를 하다 보면 해당 곡을 적어도 서른 번은 듣게 되는데 새삼 노래를 듣다 보니 예전과는 분명 다른 분위기지만 요즘도 좋은 노래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디선가 보기로 30대 중반이 넘어가며 새로운 노래를 더 이상 듣지 않을 때가 인간이 한 번 늙는 순간이라고 한다. 이렇게 일부러라도 새로운 노래를 찾아보고 연습하는 과정이 나중에 동창회에 나갔을 때 친구들보다 얼굴에 주름 하나라도 적게 만들어줄까? 확실한 건 늘 변화가 없고 반복되는 줄 알았던 세상이 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