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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19. 2024

상처받은 기억을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종종 상처를 받는다. 일회성의 관계에서는 한 번 상처받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서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부부처럼.

 지금 60대 중반인 부부는 약 35~40년 전에 결혼을 했다. 1985~1990년 사이 결혼을 한 셈이다. 1985년의 혼인 건수는 38만 건, 1990년의 혼인 건수는 39만 건이다. 2021년 이후 혼인 건수는 20만 건을 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결혼을 하는 것도, 출산을 하는 것도 당연시 여겨지던 시대였다. 그때도 아마 지금의 젊은이들 못지않게 결혼을 하기 싫은 사람,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결혼을 거부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 사람들은 결혼을 했고, 이혼도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냈다.

 한 중년 여성 환자가 나에게 개인사를 고백해 왔다. 환자는 결혼하고 3개월 뒤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4명의 시누이는 사사건건 환자를 괴롭혀댔고 욕도 서슴지 않았다. 남편은 중간에서 어떠한 중재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고생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장성하고 독립해 나갔다. 

 뒤늦게나마 고생을 알아준 사람이 있었다. 시자부들이었다. 그들의 아내가 올케에게 막말을 하는 걸 보면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시자부 중 한 사람은 자신의 아내를 용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환자는 차마 그러겠다고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시자부는 유명을 달리했고, 환자는 그냥 그때 용서한다고 했더라면 시자부가 마음 편히 가셨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괴로워졌단다.

 환자의 마음속은 지옥이다. 남편과 시누이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원망을 직설적으로 표출해서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애초에 그럴 사람이라면 가슴에 맺힌 한 때문에 병이 나도록 자신을 억누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하기도 어렵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진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있을까? 하물며 그것이 하루도 아니고 수십 년에 걸쳐 쌓인 기억이라면.

 의사로서 잊는 게 답이다, 용서하는 게 답이라고 말을 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면 쉽게 잊지 못하고, 때로는 복수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은 어떻게 보면 짧고,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에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하는 게 더욱 생산적이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길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용서란 참 어렵다. 그러니 용서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정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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