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라 四色 모험 2. 백색의 네팔

인도, 네팔, 이집트, 일본에서 했던 네 가지 체험

by 유송

2. 네팔의 히말라야 트레킹

Thorong-La.jpg 안나푸르나 서킷의 경로

히말라야는 '눈이 사는 곳'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히말라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아마 에베레스트일 테지만, 그 외에도 안나푸르나와 마나슬루 등 많은 산들이 히말라야에 속한다.

이 중 내가 갔던 곳은 안나푸르나이며, 정확히는 "안나푸르나 서킷" 루트였다. 이 루트는 평균 보름이 걸리는 곳으로 가장 높은 지점은 5,415m의 토롱라이며, 좀솜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반대편의 베시사하르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일행 2명, 포터 2명을 합해 총 5명으로 안나푸르나 서킷에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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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서킷의 초입인 불불레 주변. 포터는 사진에서처럼 나의 짐을 들어준다. 내게 약 18kg의 짐이 있다면 15kg의 짐은 큰 배낭에 넣어 포터에게 맡기고 나는 물과 기타 용품이 들어있는 3kg 정도의 작은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것.


히말라야에 가면 모든 곳이 눈으로 덮여있을 것 같지만 실은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한국의 산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경을 볼 수 있다. 등반 중의 느낌도 한국과 비슷해서 점점 더워지고 땀이 줄줄 흐르기도 한다. 때는 1월이었지만 우리나라 한겨울처럼 춥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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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이라고 해서 완전 '야생'일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요소요소마다 롯지(숙박업소)가 있어 잠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도가 낮은 곳에서는 전기도 이용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올라가기 전까지는 휴대폰과 카메라 충전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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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의 트레킹을 안전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장비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여름 날씨 같다가 나중에는 극한으로 날씨가 바뀌기도 하지만 중간에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허리까지 쌓인 눈 속을 걸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방수자켓과 스패츠, 고어텍스 등산화 등을 갖추지 않는다면 완주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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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m를 넘어가면 슬슬 설산이 가까워지고 히말라야에 와 있다는 실감이 난다. 저 아래서는 얼음 한 조각 같던 설산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에서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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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천국의 문(Heaven's gate)라고 불리는 곳. 저 뾰족한 끝을 따라 하늘로 날아가면 정말로 천국이 있을 것만 같다. 고산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실제 고산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지는 것 같고 온몸이 오한으로 덜덜 떨렸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비아그라를 먹어도 좀처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옷을 열한 겹이나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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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하루는 대개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출발해서 중식을 먹는 지점에서 끝난다. 지대가 높고 산봉우리가 해를 가려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베테랑인 포터들은 해가 져도 이동할 수 있겠지만 등산에 익숙지 않은 여행자라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에 하루에 6-8시간만 걷는다.


하루 걷기가 끝난 뒤 저녁에 불가에서 설탕 듬뿍 넣은 차를 마시면 온몸이 노곤해진다. 하루 종일 걸으며 과거를 돌아보고, 하루를 보낸 뒤 침대에서 또 다시 삶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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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등산화를 길들이지 않은 여행자라면 나처럼 고생할 수도 있다. 단단한 등산화 뒤축에 피부가 쓸려서 물집이 생기고 벗겨지는 것이다. 추위보다도 이 물집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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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m쯤 되면 모든 곳이 하얗게 변한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하얗게 빛나는 광경을 보면 누구나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안나푸르나 서킷을 갔다온 여행자라면 누구나 마낭의 멋진 풍경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 고도가 되면 밤에 무척 춥다. 그래서 경험자들은 초행자에게 '날진 물통'이라는 보온력 좋은 물통을 준비하기를 권하는데, 그 물통 안에 뜨거운 물을 받아서 침낭의 발쪽에 넣어 두면 밤새도록 추위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는 밤마다 얼음장 같은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는 게 고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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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직한 셰르파의 등을 보며 말없이 걷다보면 어느 새 토롱라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정상을 정복했다는 기쁨보다는 이조차 한없이 낮은 곳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5,415m의 토롱라 주변으로 7천 미터를 넘는 어마어마한 봉우리들이 기상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헬기를 타고 올라가고 산소통을 멘 채 에베레스트 최고봉을 정복하는 오늘날 5,415m의 봉우리는 고도상 특별한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여기에 오른다고 해서 신문이나 TV에 나오거나 엄청난 깨달음을 얻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보름간 바닥에서부터 정상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그 여정은 가히 보물상자와도 같다. 그 상자를 열면 호우, 벼락, 폭설, 강풍, 물집 등 온갖 고초가 당신을 기다린다. 그 고초들을 견디며 상자 속의 물건들을 꺼내다 보면 당신은 인내, 우정, 사랑, 용기 같은 많은 보물들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별 것인 일이다. 백색의 히말라야는 오직 네팔에만 있다.

나는 오늘도 그 곳을 꿈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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