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창, <유라시아 대륙 자전거 횡단기> 독후감
간혹 책을 읽을 때 자꾸만 무채색의 풍경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나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남들이 보기에 비상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저자를 만날 때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자 행창스님은 약 15년 간 외국에서 유학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로 유라시아 횡단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이미 전에도 중동을 자전거로 횡단을 경험이 있었고, 당시 여행을 마치며 다시는 자전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자전거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의 여정은 독일에서 시작해 체코,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카자흐르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중국에서 끝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대장정이 아닐 수 없다. 소요기간만 약 1년의 엄청난 대장정을 이 스님은 자전거 한 대만 가지고 해낸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이라면 저자가 스님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독특한 문체와 불교 관련 내용이다.
문제는 내 자신이 깨어 있어야만, 떠남과 만남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은,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과 자신을 위한 막대한 노력의 투자다. 그렇다고 이 투자 자체에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
겨우 10여 일 안 씻었다고 이토록 많은 때가 나오다니. 그동안 소홀히 해온 수행으로 내 업장의 때는 또 얼마나 묻어 있는지. 육신의 때야 비누칠 한 번으로 사라지겠지만, 이 놈의 업장의 때는 한 번 달라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법이니 이제부터라도 업장을 조금씩 닦아가야겠다.
이런 사색의 순간들이 여행기 중간중간에 등장하는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원래 불교 정신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고 읽기 편할 것이다.
책의 구성은 여정과 도시 소개를 반반 섞어서 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편에서는 신장 자치구에 도착했을 때의 소감과 중국의 소수민족 지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 뒤에 신장 자치구의 지역적 특색이나 역사 등에 대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덧붙이는 형식이다.
실질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경로로 움직이면 좋을지, 어디에 자면 좋을지 등의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많지 않다. 그건 아마 스님의 평소 마음가짐 때문인 듯하다.
세상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길을 떠난 이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이차적인 문제엔 신경을 접어두는 게 좋다. 어느 세상이라도 다 사람이 사는 동네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계신 분이 딱히 미주알고주알 여행의 디테일에 신경을 쓰실 리가 없다.
고로 편하게 읽자. 아하, 스님은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군... 하며 읽으면 될 것 같다. 여하튼 대단하신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