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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Apr 17. 2020

만족스러운 주말을 위한 레시피

어떻게 해야 주말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어떻게 해야 주말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주말도 레시피가 필요해


매주 돌아오는 주말이지만, 주말은 늘 아쉽고 짧게 느껴진다. 평일은 더디게 흘러가는데 반해, 주말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간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다. 낮잠이라도 많이 자는 날에는, 눈만 감았다 떴는데 월요일이 돌아오기도 한다.

한정된 주말을 잘 보내고 싶다는 욕심에 되려 망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급작스러운 당일치기 여행을 떠났다가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만 버리고 귀가한 적이 있다. 겨울 바다를 보겠다고 강원도로 떠났는데, 정작 바다는 1시간도 못 보고 차만 8시간을 타야 했다.

‘어떻게 해야 주말을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나지.’ 고민만 하다가 하루를 보낸 적도 있다. 머리로만 복잡하게 고민하니, 이것도 별로일 것 같고 저것도 별로일 것 같았다. 결국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한 채 주말이 지나갔다. 집에만 있자니 무기력하고 심심하고, 밖에 오래 있으면 체력이 부치고 집이 그리웠다. ‘집에 있을 것인가, 밖에 나갈 것인가.’는 매주 고민하는 문제다.

만족스럽지 못한 주말을 몇 번 되풀이하고 나니, 나만의 주말 레시피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 참치 기름에 김치를 볶다가 고춧가루 한 스푼, 설탕 한 스푼, 그리고 카레가루와 후추를 조금씩 넣으면 내 입에 딱 맞는 찌개가 탄생한다. 만족스러운 주말을 보내는 것도 요리와 마찬가지다. 나에게 맞는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 계량이 필요하다.





주말의 3 유형


내가 보내는 주말은 주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 불금 + 숙취 유형
2. 토요일 외출, 일요일 휴식형
3. 주말 내내 외출형


먼저, 1번 유형. 한 달에 한 번 정도 1번 유형의 주말을 보낸다. 한동안은 이태원 물담배 펍에 꽂혀서 퇴근 후 이태원에 종종 갔다. (코로나 사태 전이다.) 지인의 사촌이 펍에서 디제잉을 해서, 가는 김에 얼굴도 보고 술도 사서 마시곤 했다. 으레 이태원의 술집들이 그렇듯이, 밤이 깊어질수록 흥겨워지기 때문에 술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2-3시가 된다. 그때 잠들면 다음날 2-3시쯤에 눈을 뜨고, 숙취와 탈력감 때문에 토요일은 좀비처럼 보낸다.

일요일 즈음되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세수를 하지 않고 잠든 피부를 위해 팩을 한다. 해장을 하겠답시고 어질러둔 식탁을 치우고, 깨끗하게 목욕도 한다. 뒤늦게 밀린 일상 글을 쓰고, 다음날 먹을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다. 조금이라도 주말을 더 즐기기 위해 침대에 바싹 붙어 전투적으로 넷플릭스를 본다. ‘지금 잠들고 눈 뜨면 월요일이다!’하는 마음에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버틴다. 어찌 됐건 월요일은 돌아온다. 월요일이 되면 ‘대체 내 주말은 어디 갔지.’하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다음은 2번 유형. 불금은 얌전하게 보내는 대신 토요일에 바깥나들이를 간다. 토요일 오전 중 미술학원에 갔다가 밖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온다. 학원이 끝나면 근교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평일에 사지 못했던 생필품을 사러 돌아다니기도 한다. 일요일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낸다. 1번 유형에 비해서 훨씬 생산적이고, 죄책감이 덜 드는 데다가, 휴식과 외출의 균형이 적정하다.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에 약속을 잡는 것보다는 반대의 경우를 더 선호한다. 일요일에 외출하면 주말 동안 쉬지 못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조삼모사 원숭이와 다를 바가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마지막 3번 유형은 주말 내내 외출을 하는 유형이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나타나는 드문 유형이다. 1박 2일 여행이나, 본가에 다녀온 경우가 3번 유형에 속한다. 이 경우에는 가뜩이나 떨어진 체력이 바닥이 나고, 급기야 잡아놓은 약속조차 나가고 싶지가 않다. 밖에 있는 동안 즐거웠을지도 모르지만, 주말 동안 해결하지 못한 집안일이 가득 쌓여 일상에 불편을 주기도 한다. 체력적인 소모가 커, 월요일 출근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해보고 나니, 역시 휴식과 놀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2번 유형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죄책감은 줄이고, 만족도는 높이고, 휴식의 효율성을 최대로 하는 레시피를 찾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주말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완성된 레시피


토요일은 부지런히 움직이려 하는 편이다. 토요일을 부지런히 보내야 일요일을 게으르게 보낼 당위성이 생긴다. 주로 평일에 하기 힘든 일을 처리하며 보낸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사서 읽기도 한다.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을 미리 계획해두기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근교로 드라이브를 간다. 별다르게 하는 일이 없어도 바깥공기를 쐬고 걸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외출을 하니 기분이 상쾌해져서 이렇게 외친다. '역시 밖에 나오길 잘했어!'

일요일은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는 날이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커피와 함께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낮에는 편의점에서 젤리나 과자 같은 간식거리를 잔뜩 사 온다. 와식형 인간으로 변신할 시간이다. 누워서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고, 침대 테이블에 올려둔 간식을 찾아 입에 넣는다. 이때 간식 및 놀거리는 모두 침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죄책감 없이 게으름을 부리고 있자니, '역시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누워있다가 졸리면 그대로 잠도 실컷 잔다. 너무 누워있어서 몸이 뻐근하다 싶을 때가 돼서야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한다. 이번에도 좋은 주말이었다.

‘좋은 주말’의 정의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그중 오답은 없다. 다만, 나에게 더 잘 맞는 답은 존재한다. 내 경우에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마음껏 게을러질 수 있는 휴일이 필요했다.


나를 보살피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면, 비로소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잘 쉬는 것도 요령이다. 주말을 ‘잘’ 보낸다는 건, 온전한 내 시간을 잘 운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제는 제법 괜찮은 휴일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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