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니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지난 주말은 다시 돌이켜봐도 영 아니올시다였기 때문이다. 삼시 세 끼는 배달음식으로 때웠고,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와 짐들이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었다. 침대에만 딱 붙어 만화와 소설을 읽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미술학원 수업도 취소했다. 월요일 출근이 아니었다면, 괴로운 편안함을 계속 유예해가며 침대에만 붙어있었을 것이다. 돼지우리 저리 가라인 집안꼴을 볼 때면 '치우긴 치워야 하는데.' 싶었지만 몸뚱이가 격렬히 반대했다. 결국 몸뚱이의 승리였다.
단정하고 깔끔한 옷을 입은 채 사무실에 앉아있으니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통유리에서 햇빛이 함빡 들어오고, 누군가 연결해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재즈 피아노 음악이 나왔다. 살다 보니 월요일 출근에게 고마워지는 일도 생기는구나. 주말을 어떻게 보내든 월요일은 돌아오고, 게으름을 리셋한 채 새로운 한 주를 보낼 수 있다. 커피까지 한 잔 하고 나니, 일주일을 활기차게 보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그 의욕은 보통 목요일, 빠르면 수요일이면 사라지기는 하지만.
주말에 퍼져있다가도, '출근'이라는 신호가 떨어지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옷을 꿰입고, 출근을 한다. 양치를 할까 말까, 옷을 입을까 말까, 출근 버스를 탈까 말까 고민하지 않는다. 출근이라는 강제적인 신호로 인해 일련의 과정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로서는 그런 강제성이 기꺼울 때가 많다. 프리랜서로 살다가는 인생이 폭삭 망하지는 않겠지만, 가난을 면하기는 힘들게 분명하다. 출근을 하지 않는데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 씻고,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볼 자신이 없으므로.
특별히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평소와 같은 날에는 부족한 인내심과 의지력으로도 괜찮은 하루를 일구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울하고 힘든 날, 괴로워서 더 이상 문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럴수록 힘든 일만 생각나는 날에는 일상의 덕을 톡톡히 본다. 일상 루틴은 특히 스트레스 상황에서 활약하기 때문이다.
어느 우울한 날이었다. 출근길에 평소처럼 이북리더기를 챙겼다. 애용하는 도서 정액제 사이트에서 지금 내 상황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골라 도서 리스트에 추가해두었다. 날씨처럼 흐리고 대책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가방에 넣었다. ‘불안’은 3년 전 글쓰기 모임원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읽든 안 읽든, 위안이 될 수 있는 수단을 품고 있다는 건 든든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내 도서 리스트에는 읽지도 않는 책들이 늘 꽉꽉 채워져 있다.
떠드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고요한 소음으로 꽉 찬 열차칸 안에서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열차가 선로를 긁는 소음, 뒤에 선 남자가 핸드 선풍기를 돌리는 소리, 부스럭거리고 기침하는 소리. 서로의 어깨와 어깨가 맞닿는 지하철. 냉방이 잘 되어있지만, 사람이 많아 약간은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곳. 그 속에서 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지속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빠짐없이 가야 할 곳이 있고, 그곳에 익숙하고 친근한 이들이 있다는 것. 내 흔들림과는 별개로 지속해야 하는 일상이 있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출근을 한 후에는 평소처럼 업무를 보았다. 메일을 쓰고, 루틴 업무를 하다 보니 가지고 있던 고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엑셀에 수식을 입력하면 값을 출력해내듯이, 정해진 일을 출력해내기에 바빴으니까.
퇴근 후에는 친한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강남에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친구를 만났다. 적당히 어둑한 조명에, 이야기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꾸덕한 크림소스 파스타에 짭짤한 디아블로 피자를 주문했다. 샛노란 노른자를 톡 터트려 면과 함께 섞고, 두툼한 돼지고기를 얹어 먹었다. 살구 맛 맥주를 마셨고, 피자의 감질맛을 더하기 위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이는 장면을 구경했다. 편안하고 오래된 사람과, 서로에 대해 설명하거나 변명할 필요 없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와 2차까지 갔다가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에 헤어졌다. 웃고 떠드느라 문제를 떠올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집에 들어가 씻고 지친 몸을 뉘었는데, 열심히 하루를 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를 돌이켜보니 나빴던 것보다는 좋았던 점이 더 많았다. 일기장을 흠뻑 적시며 울지 않아도, 친구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내며 하소연하지 않아도, 애인에게 괜한 성질을 부리지 않아도, 우울한 날에도 보통의 날을 잘 보내게 되었다.
보통의 날을 보낼 수 있도록 지켜준 건 다름 아닌 일상이었다. 출근길에는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고, 회사에서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업무를 시작하는, 퇴근길에는 블로그에 올릴 일상 글을 적고, 자기 전에는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책을 읽는 일상. 모든 게 제자리라는 감각을 느끼며,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매일같이 출근을 하는 것, 다수의 반복 업무를 하는 것. 전부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던 일상이지만, 그 일상이 고민과 번뇌로부터 나를 지켜냈다. 삶이 무너질 것 같을 때, 나를 지탱하는 건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