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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Apr 22. 2020

외롭지 않은 혼술의 비결

오늘 저녁, 랜선 술자리 어떠세요?


우리는 모두 혼자인 채로 함께다.
-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북라이프, 2017



앞서 밝혔듯이 혼술을 좋아한다. 그중 각별하게 좋아하는 건  먹방을 보면서  마시기다. '먹방 보며 음식 먹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술을 마시는 영상을 보면서 술을 마시면 술맛이 더 좋다. 밖에서 술자리를 가지면 자리가 과해질 위험이 있기에, 평일 저녁에 술이 당기면 유튜브를 틀어놓고 혼자 술을 마신다.

즐겨보는 건 일상 브이로그를 표방한 술, 먹방 영상을 올리는 ‘SIYEON HAN(한시연)’님의 채널이다. 한시연 님의 본업은 직장인이지만, 잘 놀고 잘 먹는다는 재능을 살려서 유튜브에 일상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는 편의상 시연님을 구독자들이 부르듯 ‘시연 언니’라 칭하도록 하겠다.)

시연언니의 영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처음엔 같은 술꾼에 대한 호감이었고(술꾼들은 서로를 좋아한다.), 특유의 유머 코드와 호탕한 모습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평소에는 허술한 듯 하지만 일할 때는 멋진 모습, 그리고 박력 넘치게 스피닝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시연님은 귀여운 고양이의 집사다. ‘호야’라는 이름의 뚱냥이인데, 동그란 두상과 순진한 눈망울이 무척 귀엽다. 호야 하나만 있어도 언니의 영상을 볼 이유가 충분하다.

이러한 언니의 매력이 사골처럼 푹 우려 져 나온 영상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상이기도 하다. 바로, ‘분당 영상’이다. 조회수 34만이 넘어가고, 구독자들은 주기적으로 다시 보고, 시연언니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 영상으로 입덕 한다는 전설의 영상. 구독자라면 아마 무슨 영상인지 짐작할 것이다. (실제 영상의 제목은 '[먹방 브이로그] 삼겹살 소맥 혼자 먹는데 구독자님들이 왜 거기서 나와?(ft. 진상의 인간화 나야 나)'다.)

영상의 내용은 이러하다. 언니는 평소 즐겨하는 운동인 스피닝을 끝내고, 혼자 소맥에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그때 시연 언니의 구독자분들이 언니를 발견한다. 서로를 발견하고 반가워하던 그들은, 급기야 자리를 옮겨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술자리는 무르익어 가고, 술병도 하나 둘 쌓여간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전환된다. 시연언니가 급박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눈을 떠보니 분당이에요...”

그렇다. 언니는 술자리에서 기억을 잃고 분당에 사는 구독자, 그것도 초면인 구독자의 집에서 눈을 뜨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출근을 하는 평일이었기에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로 향한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해장을 하며, 어찌어찌 하루를 버텨낸다. (언니가 말한다. “야... 미쳤다, 미쳤어...”) 그때의 인연으로 언니와 분당팸은 종종 술자리를 가진다. 우연하게 좋은 알코올 메이트를 만나게 되다니. 웬만한 로맨스 소설은 저리 가라인 낭만적인 서사다.

언니처럼 그 순간에 열심인 사람인 사람도 드물 거다. 우연히 구독자를 만나, 다음날 출근이라는 사실은 제쳐두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자세. 숙취 때문에 힘겹게 출근했으면서, 퇴근하자마자 스피닝을 하러 달려 나가는 그 열정. 힘든 일은 빠르게 제치고 즐거운 시간은 있는 힘껏 누리려 노력하는 언니의 모습은 정말이지 멋있다. 언니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위안을 주는 사람이다. 일분일초가 바쁘고, 절대 취하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완벽하고 칼 같은 사람보다는, 가끔 술에 취하고, 자주 웃는 사람. 무엇보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 그게 바로 시연언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언니가 더욱 좋아졌다.







시연언니는 영상을 켜놓고 여러 음식을 먹는 ‘돼지 파티’를 자주 개최하는데,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에는 꼭 술을 곁들여 먹는다. 언니가 한 잔 두 잔 마실 때마다, 나도 따라서 술을 한 잔, 두 잔 들이켠다. 술을 마시며 근황을 이야기해줄 때는 친한 언니와 둘이서 편하게 술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언니가 여러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땐 신나는 기분에 동화되기도 한다.

한때는 시연언니가 맛있다고 하는 술은 죄다 따라 마시기도 했다. 연태고량주, 느린 마을 막걸리, 그리고 데스페라도스까지. 연태고량주에 칭따오를 섞어 먹고, 데스페라도스와 코젤로 입가심을 하는 건 모두 언니의 레시피다. 영상에서 새로운 레시피를 소개해주면 편의점이나 마트를 헤매어 레시피를 따라 했다. 맛있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레시피의 성공 여부는 중요히 않았다.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으니까.

개인 방송 시청의 또 하나의 묘미는 댓글이다. 댓글창을 보면, 지친 화요일 저녁에 시연언니의 영상으로 힐링을 얻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다. 힘든 업무를 마친 후 지하철에서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집에서 맥주를 까며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 구독자들은 시연언니의 영상을 보며 함께 웃고, 댓글로 농담을 주고받고, 시연언니가 다녀왔던 식당에 가거나 시연언니가 좋아하는 술을 따라 마신다.

한 명의 인물을 교집합으로 하여 우리의 일상이 맞닿는 부분을 발견하면 놀라우리만큼 친숙한 기분을 느낀다. 실제로 만날 일은 없을 것이고, 개인적으로 친분을 맺을 일도 없을 테지만 나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해진다.


이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 그 ‘느슨한 연결고리’가 내 삶을 지탱해주는 하나의 축이 된다. 그 덕에 나는 혼술을 하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하는 건 혼술이되, 혼술이 아니다. 나에겐 한시연 언니와 수많은 돼지 파티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술 먹방을 보면서 술 마시기'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이다. 밖에서 술을 마시기엔 피곤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땡긴다면 오늘 저녁, 랜선 술자리를 가져보시는 건 어떠신지?



*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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