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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Jun 03. 2020

관계 회피형 인간


어린 시절, 전형적인 애늙은이 타입이었다. 조숙해서라기보다는 눈치를 많이 봐서 그랬다. 원하는 걸 잘 말하지 못했고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법도 없었다. 사람보다는 책이 편했고,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누군가에게 터놓기보다는 관련된 책을 먼저 찾아본다. 교우관계는 넓고 얕은 것보다는 좁고 깊은 걸 선호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깊은' 관계였는지는 모르겠다.


친구를 사귈 땐 먼저 다가와준 사람과 친해졌다. 새 학기를 맞아 1년을 함께 할 친구를 찾는 학기초 이벤트는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지식in에 '새 학기 친구 사귀는 법'을 검색해보았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먼저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어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어울리곤 했다. 지금도 친한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사교적이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한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와 있으면 그쪽에 나를 맞췄다. 서운한 점이 있으면 그걸 드러내 놓고 말하기보다는 혼자 삭혔다. 그리고 그걸 하나둘씩 모아 두고 있다가 혼자 아무 말도 없이 거리를 늘려버리거나, 한 번에 폭발해서 난데없이 예민하게 굴곤 했다. 예를 들어, 무례한 언사를 들었을 때 당장 반박하지 않고 속에 담아두고만 있다가(순발력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기분이 상했음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불만을 한 번에 터트리는 것이다.


서운함을 느낀다는 건 내가 상대에게 집착한다는 반증 같아서, 그런 감정이 생기면 곧장 부인했다. 서운함, 분노, 짜증 등 부정적인 감정은 전부 억압했다. 그런 감정을 타인에게 공유했을 때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지금보다도 요령이 더 없었다.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멀어지고, 그랬다가 다시 또 혼자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고. 정작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래도 학생 때는 한정된 사람만 만났으니 큰 문제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마음이 지옥도로 변한 건 대학생 때부터였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너무나 많았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내가 섬세하고(예민하고), 마음이 여리며(소심하며), 고독을 즐기는 사람(아싸 타입)이라는 걸 알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 살, 동아리 부스들이 죽 늘어서 있는 동아리 설명회에 참여했다. 한 봉사 동아리 회장은 현란한 말솜씨로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다. 함께 있던 동기들이 "저 사람 되게 재밌다. 동아리 들어가면 재밌겠는데?"라며 동아리 가입 의사를 밝혔고, 나도 함께 가입했다. 그리고 한동안은 내가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사실조차 반쯤 잊고 살았다. 술 마시고, 놀러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동아리 활동을 종종 하긴 했지만 봉사활동은 한 적이 없고, 술 마시는 친목모임에만 참여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되자 연이은 약속이 없으니 무료해졌다. 뭐 할 거 없나 하다가, 번뜩 동아리 생각이 났다. 마침 봉사 참여 신청을 받길래 곧장 신청하였다. 처음 참여한 건 학교 복도에 벽화를 그리는 봉사였다. 복도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페인트로 꼼꼼하게 칠을 했다. 봉사가 끝난 후 동아리 사람들과 다 같이 간단하게 술도 한 잔씩 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재밌었다. 그렇게 봉사를 몇 번 나가다 보니 열혈 회원이 되어 있었다. 봉사 출석률 90%에 달하는 우수 회원이었다.


다음 해가 되자, 동아리 회장이 나를 부회장으로 추천했다. 나만큼 동아리 활동에 열심인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대부분 회장이 도맡아 했기에 큰 애로사항은 없었다. 문제는 동아리 임원진 사이에서 일어났다. 동아리원이 2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중앙 동아리였기에 임원진도 8명이나 있었다. 같은 동아리였어도 각별하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이제 막 친해지려던 차였다.


한 번은 C와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다른 임원진 A, B가 어렵더라.”라는 이야기를 했다. C는 그 이야기를 A, B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나에게 '그 두 사람도 너를 불편해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피차 어색해진 상황이었다. 어색한 사이에서 “우리 좀 어색하다, 그렇지?” 하면 걷잡을 수 없이 어색해지는 것처럼, 서로를 어색하고 불편해한다는 걸 안 순간 사이가 걷잡을 수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동아리 생활이 엉망이었다.


사실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자주 봐야 하는 사람들인데, 기왕이면 친한 게 좋으니까. 어색하지만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일을 겪고 난 이후에 어색함을 넘어 불편해졌고, 불편함을 넘어서 피하고 싶은 상대가 되었다. 구 남자친구도 아닌데 웬걸. 그리고 어영부영 1년을 보내고 서로 동아리방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것으로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그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선택지로 떠올리지 못했다. 그냥 아예 멀어지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속수무책으로 혼자 상처를 받고 숨어버렸다.


또 한 번은, 새로운 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원래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나 빼고 이미 다 같이 친한 조직에 들어가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그 무리 중 남자 아르바이트생 하나가, "저 누나는 억지로 웃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했다. "사람 면전 앞에서 그게 무슨 뜻이에요?"...라고 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이후에도 나만 보면 억지로 웃는다고 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나한테 하등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웃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다른 직원이 대놓고 못되게 굴고 텃세를 부리는데도 항변하지 못한 적도 있다. 내가 별다른 대응을 못하자 점점 횡포가 심해졌다. 대놓고 눈을 부라리며 짜증을 부리고, 시종일관 싫은 티를 냈다. 갈등 상황이나 대치상황을 만드는 게 불편해서 두 번 모두 꾹 참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내 친구는 누가 못되게 굴자 똑같이 못되게 굴어주었다던데. 왜 나는 그렇게 못할까?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내가 선택한 건 도망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한동안은 스스로를 퍽 미워했던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하는 나도 싫었고, 신경 쓰지 않는 척 신경 쓰는 것도 싫고.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와 별개로 불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서 겉으로는 웃음을 흘리는 게 싫었다. 비굴하게 느껴졌다.


점차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피곤하고 두려웠다. 나한테 무뚝뚝한 사람들, 나를 싫어하는 건가 헷갈리는 사람, 유독 나한테만 말을 안 걸고 시큰둥한 사람. 그런 사람이랑 별 수 없이 매일 봐야 할 때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싫은가. 오늘 피곤한가. 아픈가. 원래 성격이 저런가. 내가 불편한가. 내가 뭐 실수했나. 실은 나도 그 사람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내 생각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몰두하느라 늘 불안하고 절망스러웠다. 


불편한 사람들이랑 있으면 차라리 차가워 보이게끔 행동하려 했다. 물론 맘처럼 잘 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타인 때문에 내가 아닌 누군가를 연기한다는 게 상대를 의식하다는 방증이 아닌가. 차선책으로 환경을 바꾸었다. 불편한 상황이 생길 법한 자리에 가지 않고,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예전처럼 크게 상처 받을 일은 딱히 없었다. 이것도 회피라면 회피지만 아무렴 내 마음이 편한 게 우선이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랴. 내게 맞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 이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싫은 건 싫다고 좋은 건 좋다고 잘 말하는 어른으로 성장하였습니다...라고 한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불행히도 그건 아니다. 여전히 남에게 싫은 소리는 잘 못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도 나쁜 인간은 많다고 믿는다. 나아진 건 덜 예민한 척하는 연기력과 나에게 유해할 것 같은 환경을 피하는 감별력 뿐이다. 그래도 남이 나를 싫어할까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많이 덜어냈다.


살아가다 보면 내게 유해한 종류의 인간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무례한 언사를 일삼고, 저 좋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의 말에 순발력 있게 반박할 자신은 없지만, 이제는 그들의 말이 나를 함부로 침해하게 두지는 않겠다고 다짐해본다. 내 하루는 소중하니까, 하등 중요치 않은 사람의 말을 곱씹는데 쓸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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