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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Jun 05. 2020

회피형 인간의 인간관계


1.

한 번은 친한 친구와 의견이 달라 싸운 적이 있다. 휴학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친구가 내게 카톡으로 “휴학을 했으면 토익 공부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라고 했다. 나는 그런 식의 조언이 싫으니 그만 하라고 화를 냈고, 친구는 친구끼리 그런 말도 못 하냐고 화를 냈다. 애초에 우리는 타인에게 허용한 정서적 거리가 달랐다. 친구에게 '친구'란 서로 조언도 해주고 밀어주고 끌어주며 부대껴 사는 존재였고, 내게 '친구'란 독립적인 개체로 잘 살다가 만나면 즐겁고, 도움을 청할 때만 도와주는 그런 존재였다.  


원래는 내게 무슨 말을 하든 '허허, 그렇구나.' 하면서 넘기는 편인데(물론 속으로는 다 적립해둔다. 안 그러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그런다.) 그날은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이었고, 그간 서운했던 일들이 겹쳐 과하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친구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을 거다. 서로 싫은 소리를 몇 번 주고받다 보니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친구는 “일주일 정도 연락하지 말자.”라고 했다. 나는 싸우면 즉각 대화로 풀고 끝내는 걸 좋아한다. 연락하지 말자는 말이 관계의 종말을 선포하는 말로 들렸다.


일주일 동안 친구와 싸운 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많이 화가 났나...? 나도 화나는데. 내가 사과해야 하나? 뭐라고 사과하지? 사과하면 받아줄까? 근데 얘도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뫄뫄 한 거, 옛날에 뫄뫄 한 것도 다 화났는데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생각이 부정적으로 넘어가고 끊이질 않다가 이 고민을 종결하기 위해 얘랑 아예 절교를 해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치달았다.


내가 일주일 동안 절교까지 생각하며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친구는 약속한 일주일 뒤 연락을 해왔다. 나는 친구에게 “그래서 나랑 더 이상 안 보고 싶어?”라고 묻자 친구는 경악했다. "그냥 싸운 건데 어떻게 다시는 안 볼 생각을 할 수 있어?" 나는 오히려 친구가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데 경악했다. 우리 관계가 그렇게 튼튼했단 말이야? 한편으로는 감동이기도 했다. 나랑 싸웠는데도 계속 얼굴을 보려 했다니.


그때 알았다. 내가 스스로를 무인도에 가둬놓고, 다리를 통해 왕래하던 사람이 힘든 감정을 안겨주면 다리를 무너뜨려버린다는 걸.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혼자고 북 치고 장구치고 자진모리장단으로 상모 돌리기까지 하다가 지쳐버린다는 걸. 충분한 대화가 없었기에 타인의 마음을 오역했다는 걸.


친구와 다퉜을 때가 아니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나만 먼저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그랬다. 상대방의 마음을 혼자 상상하다가 서운한 마음이 커지면, 더 이상 보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상대가 싫어서 보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거부당했을 때의 상처가 두렵고 당장의 갈등이 괴로우니 회피하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렇게 다 끊어내고 나면 뭐가 남겠는가. 혼자 남아 외롭기만 하겠지.


어차피 100% 마음에 드는 관계 같은 건 없다. 100% 좋고 완벽한 친구 같은 건 없다. 내 환상 속에 있으면 모를까.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좋은 친구는 아닐 거다. 한 50% 괜찮은 친구만 되어도 감지덕지다.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부대끼고, 서로 참견 좀 하고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계도 괜찮은 거 같다.


물론 심리적으로 몰릴 때면 또 회피형다운 습관이 불쑥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관계를 끊는다는 선택지는 최대한 치워놓고, 평소에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다. 친구야, 보고 있니?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내가 또 절교한다고 하면 뒤통수를 갈겨주렴.




2.

하루는 친한 친구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가 무르익다가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가족 외의 누구도 모르던 이야기, 나조차 해답을 찾지 못해 엉성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한창 말을 쏟아내고 나니 후회가 됐다. '얘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면 어쩌지?'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됐다. 친구가 나를 비난할 까 봐 한껏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내 친구이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내 편을 들어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한테 이해받았다는 사실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말해도 이해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내 오만이었다. 그 이후,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내 입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문제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 문제에 귀 기울여 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달라졌다. 실로 외로운 우리에게 내려진 단 하나의 구원이었다.


또 한 번은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다. 만나면 몇 시간이고 본인 이야기만 하니까 헤어질 때쯤에는 지치고 힘들었다. 하루는 참다못해 친구에게 얘기했다. "너는 너무 네 얘기만 많이 해."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네 이야기를 안 하잖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빈 오디오를 채우기 위해 상대가 끊임없이 말을 했을 수도 있겠구나.


사람들은 죄다 자기 얘기만 하고 싶어 하고, 내 이야기는 궁금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내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 친구는 이제 나를 만나면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한 뒤 이렇게 묻는다. "너무 내 얘기만 했네. 너는 무슨 일 없었어?" 그런 말을 들을 땐 이 사람이 나를 배려해주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사실 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솔직하면 타인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상대방이 상처 받을 거라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함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알았다. 동아리 임원진과 불편해졌을 때 그 사람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아르바이트에서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 나쁜 건 나쁘다고 확실히 표현을 했더라면. 차라리 실컷 싸우고 끝냈더라도 지금껏 껄쩍지근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는 소중한 관계에서만큼은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서운한 건 서운하다고, 고마운 건 고맙다고. 싸우면 절교해야지, 헤어져야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시 화해하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관계는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다. 무작정 누가 다가오기를 바랄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고 연락도 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나가면서 유지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어떻게 관계가 유지되겠는가.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최대한 고마운 마음과 아끼는 마음을 자주 전달하려고 애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말을 걸고 작은 것이라도 건네면서 호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내 마음을 자린고비처럼 아낀다고 해서 상처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더라. 그걸 이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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