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로 Jul 06. 2020

친구가 많아야 행복할까?


너네는 친구가 몇 명이야?


친구가 몇 명이어야 많은 거고, 정상 범주에 드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하다고 할만한 사람들을 추리면 손으로 꼽고도 여러 손가락이 놀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보통 친구는 몇 명 정도 있어야 정상인 걸까 남몰래 궁금해하고, 인터넷에 '친한 친구 몇 명 있나요?'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인터넷 세상에는 의외로 나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친한 친구가 몇 명 정도 있는 게 정상인가요?" "친한 친구가 N명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하는 질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정상 범주에 들지 못할까 봐, (정상 범주라는 게 실재한다면 말다.) 남들보다 친구가 적은 편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싶다. 결국은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하는 게 아닌가.


이런 고민이 가장 생생했던 건 학창 시절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좋든 싫든 친구를 만들고, 함께 학기를 보내야 했다. 사교 활동은 생존활동이자 사회생활이었다. 아무랑도 친해지지 못할까 봐 걱정되는 마음, 무리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을 때 설움과 두려움. 그때만큼 인간관계가 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시절이 없었다. 대학시절은 또 어떤가. 대학 동기들이 우르르 몰려서 생일을 축하해 주는 친구와 조용한 생일을 보내는 나를 비교하다 보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생일이 있다. 생일날 만날 친구가 없어서 가족과 생일을 보내야 했다. 가족과 생일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굉장한 축복임을 이제는 알지만, 그 당시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엄마와 외식을 하러 나갔다가 말다툼을 했고, 새로 사입은 옷은 촌스럽지 그지없었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껏 멋 내려고 웨이브를 넣은 머리도, 미용실에서 칠해준 민트색 매니큐어도 다 구질구질했다. '친구가 많지 않은 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는 나'는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지식인에서 "친구가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답변을 발견해도, 친구 관계에서 초연해지려 해도 그러기가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상황도 있는 법이다. 약속이 없고 연락할 친구가 없는 날, 가장 친했던 친구와도 상황 탓에 서서히 멀어질 때는 혼자 남은 것만 같았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거나 곁에 있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자주 두려웠고 슬퍼졌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피곤하고, 너무 멀어지기엔 외로웠다.


그렇게 어딘가가 텅 빈 것처럼 자주 외롭고 어쩔 줄 몰랐다. 그런 텅 비고 어쩔 줄 모르는 기분을 외로움으로 대강 퉁쳤다. 모든 감정을 '외로움'이라고 해석하고 나니, 그걸 채워줄 수 있는 건 친구를 만나는 일 밖에 없을 것만 같았다. 외로운 날에는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 봤다. "오늘 뭐해?" 하필 그런 날에는 다들 각자의 일정이 있었다. 그럼 '나는 왜 친구가 없지.',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나만 왜 이러지.', '얘네들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난 ㅇㅇ을 해줬는데...'로 시작하는 온갖 자조와 상념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공허한 기분은 꼭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만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공허함이 꼭 채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외로움과 닮은 공허함은 누구에게는 일, 누구에게는 야망, 누구에게는 덕질로도 충분히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외롭다는 이유로 자꾸만 약속을 잡고, 덜컥 반려동물을 입양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몰두할 대상, 몰려다니지 않아도 괜찮은 환경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내 경우는 여가 시간이 공허함을 채워줬다. 정확히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언저리에 있는 일이 외로움을 없애주었다. 언젠가 내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글을 쓰는 시간, 좋았던 책의 구절을 옮겨 적는 시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들이 빈 곳을 채웠다. 나만의 일상 루틴이 생기고, 삶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들이 뚜렷해졌다. 그게 많은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중요했다.


지금도 내 삶이 일-여가-휴식으로 균형감 있게 짜인 상태를 가장 좋아한다. 세 가지가 잘 어우러진 상황이 깨지면 외롭고 공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다만, 이제는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친구를 만나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려 한다. 대책 없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균형감 있는 삶을 유지할 때 행복함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란 균형감, 평화로움, 안정감을 느끼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금은 지루해 보여도 신나는 삶보다는 평형을 유지하는 삶을 사는 게 내게는 더 잘 맞는다. 혼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며 자연스럽게 친구가 몇 명인지 따위의 고민과 작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생에서 친구의 수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며, 친구가 내 인생의 외로움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걸. 그에게 그만의 삶이 있듯, 내게도 나만의 삶이 있다는 걸.




이전 13화 회피형 인간의 인간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