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 실망하지 않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 번째 방법은 정신수양을 통해 득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실망할 건덕지도 없이 기대가 눈곱만큼도 없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기대는 호감이나 애정같이 긍정적인 감정을 품은 상대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기대가 서운함으로 변하여 멀어진 사이가 몇 있다.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였기에 오히려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 멀어진 친구가 개인적으로 힘들고 바쁜 상황이라 점차 만나기 어려워졌다. 그는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내가 연락을 하더라도 답장을 잘 하지 않았다. 나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다. 나를 원해줬으면 하는 사람은 나를 원하지 않고, 내 마음만 비대해진 기형적인 관계였다. 그 기울어짐을 눈치채는 순간,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오로지 내 마음속에서만 벌어진 지옥이었다. 나도 점차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상황 탓이 컸지만 결국은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우정의 형태에 상대가 부합하지 않아서. 상대 역시 나에게 특정한 친구의 역할을 기대했기에 그 기대에 부응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리 바빠도 생일에는 연락을 줄 것이라는 기대, 한 번쯤은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줄 거라 생각했던 기대, 우리가 가까워도 결국 타인임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기대. 기대를 품고 실망하는 일이 잦아져서, 자꾸만 실망하고 실망하게 하는 관계에 지쳐서 점점 멀어졌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기대하는 마음이 좌절됐을 때 감정의 낙차가 커서, 아예 무심해지고 싶었다. 한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은 곧 인간관계 전체에 대한 회의로 번지곤 했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궁색하고 찌질하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분하기도 했다. 서운한 감정을 차단해버리려 애썼다.
그간의 편협한 경험을 떠올려보자면, 서운한 마음을 터놓는다고 해서 상대가 변하는 일이 없었다. 고작 나 하나의 서운한 마음 때문에 그 사람이 바뀐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말을 줄여나갔다. 서운한 마음을 표현해봤자 서로 마음만 상하고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일부러 연락을 덜 하고, 표현도 줄이고, 무언가를 베풀지 않았다.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테니, 내게 줄 필요도 없어.’라는 심리였다. 지내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건 관계에 쿨해진 게 아니라 그저 회피였다. 실망하는 일이 없긴 했지만, 관계는 삭막해졌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 게 아니라, 완벽한 관계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기로 했다. 한때 나는 얘는 더 친하고, 쟤는 덜 친하다며 친구끼리 급을 나누곤 했다. ‘A에겐 내 속마음을 여기까지 터놓을 수 있어. B에겐 이만큼만 말할 수 있으니까 B보단 A와 더 친하지.’ 하는 식이었다. 애매하게 친한 몇 사람보다는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다 나눌 수 있는 진짜 우정에 집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한 친구와 멀어지며 깨달았다. 진정한 우정이란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허구에 가깝다. 흠결없는 친구 사이는 SNS에만 있을 뿐이다.
우정은 사람마다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나며, 진짜 우정과 가짜 우정을 나누는 기준 같은 건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어떤 형태의 관계든 완전무결할 수 없다. 슬프게도,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관계는 좋았다가 나빠질 수도 있고 나빴다가도 다시 좋아질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관계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아야 우리 관계는 좀 더 멀리, 오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거창한 기대 같은 건 내려놓아 보려 한다. 좋은 관계는 그저 같이 있으면 재밌거나 편한 사이가 아닐까? 자주 만나지 못해도, 내 기대만큼 좋진 않더라도 서로를 응원해주고,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 무엇보다 친구가 내게 먼저 연락을 하든 말든, 나보다 다른 관계에 더 헌신적이든 말든 그건 나와 관계없는 일이다. 그건 전부 그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상대는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으나, 내 생각과 기대만큼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좀 실망하면 어떤가.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내가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실망시키는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높은 확률로 당신을 실망시킬 테지만 우리 평균점을 찾아가보지 않겠냐는 말...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위즈덤하우스, 2020)
우리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실망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귀하고 고마운 사람이 있다. 세상에 ‘헛된 기대’는 없다. 사람에 대한 기분 좋은 관측, 행복한 상상이 있을 뿐이다. 관계에 무감해지기보다는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음을 쓸 것이고, 그에 대한 기분 좋은 관측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상대 역시 그러리라 믿는다. 우리가 서로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시키고도 함께할 수 있는 건 관계에 대한 믿음 덕분이니.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관계에 대한 기대를 덜어내되, 진정 소중한 관계라면 믿음만은 간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