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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Oct 17. 2020

일단 받고 본다.



한국인의 겨울나기 필수품인 롱 패딩, 나는 패딩을 다섯 개 가지고 있다. 어쩌라는 거냐고? 패딩이 많아서 좋겠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패딩은 많은데, 그중 뭐 하나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패딩이 없다. 어떤 건 너무 새하얘서 부담스럽고, 어떤 건 너무 얇아서 성에 안 차고, 또 어떤 건 캐주얼한 옷에 어울리지 않아서 아쉽다. 패딩의 출처는 엄마가 선물 받았는데 자기 스타일이 아니어서 준 것 2개, 지인에게 선물 받은 것이 3개다. 내 취향보다는 선물한 이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되어있다.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진 옷을 주는 족족 옷장에 채워 넣다 보니, 어느덧 5개가 되었다.


내 꿈은 마음에 딱 드는 옷으로만 채운, 마치 편집숍 같은 옷장을 가지는 것이다.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꿈’에 불과하다. 내 옷방에는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닌, 누군가의 취향을 탄 옷들이 중구난방으로 걸려있다. 남에게 받은 옷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작년엔 벌거벗고 다녔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옷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진 물건은 누구에게 나눔 받은 것이 많다. 물건을 잘 챙겨주는 좋은 사람이 곁에 많은 영향이기도 하고, 내가 공짜를 좋아하는 대머리라서 그렇기도 하다. 물욕이 없다면서도, 또 어느 때는 공짜라면 눈알이 돌아간다. 친구가 ‘나 이사 가는데 내가 쓰던 브리타 정수기 너 줄까?’하면 냉큼 받고, 엄마가 ‘안 입는 옷 너 줄까?’하면 또 냉큼 받는다. 정수기의 디자인, 성능 그리고 옷의 재질, 무엇보다도 내 취향은 뒷전이다. 일단 받고 보는 거다. 공짜니까 아무렴 어때.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받아온 물건이 몸집을 부풀려 우리 집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분명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물건 때문에 좁은 건 매한가지였다. 옷장은 옷을 토해내고, 찬장에 들어있는 그릇은 제자리를 쌓지 못하고 뒤섞여있다. 남에게 받은 물건은 내가 고른 게 아니다 보니, 언젠가는 또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이 사고 싶어 진다. 특히 그릇이 그렇다. 요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플레이팅에 욕심이 생겼다. 원래 쓰던 그릇은 내버려 두고, 이케아에서 예쁜 그릇을 몇 개 샀다. 그래서 혼자 사는 집에 접시만 6개가 넘고, 국그릇도 4개쯤 있고, 파스타용 접시도 3개나 된다. 컵은 술잔을 포함하면 셀 수가 없다.


받아온 물건과 새로 산 물건이 질서를 이루지 못하고, 과포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다행히 물건을 버리는데 가차 없어서 물건을 내다 버리는 걸로 질량을 보존하고 있다. 사주는 대로 입고, 주는 대로 받으니까 버릴 때도 미련이 없다. 미니멀리스트의 소양 중 하나는, ‘불필요한 물건을 잘 버리는 것.’이다. 나는 오직 잘 ‘버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 꿈나무’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많이 버리는만큼 또 새로운 물건을 많이 들였다. 내가 물건을 잘 버리는 이유는 물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물건에 애착이 없어서였다. 내 정체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쓰레기를 자주 배출하는 환경파괴범이었다. 내 취향에 따라 물건을 엄선했다면, 물건을 그렇게 많이 가질 일도, 이만큼 많이 버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환경파괴범의 첫 번째 죄목은 ‘일받본’. 일단 받고 본다는 것이다. 주니까 일단 받고 본다. 언제 쓸지 모르지만 일단 받고 본다. 왜냐고? 어차피 공짜니까. 안 받는 것보다는 받는 게 이득이니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안 쓰는 물건은 버젓이 공간을 차지하면서 내 가용 공간을 줄인다. 물건을 버릴 때도 돈이 들어간다. 게다가 중구난방으로 어지럽게 놓인 물건이 내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므로 오히려 안 쓰는 물건은 받아오는 것 자체가 손해다.


나의 두 번째 죄는 스스로의 취향을 몰랐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의 나는 남들이 쓰는 거, 남들 눈에 좋은 물건이 나한테도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몰랐다. 변명을 하자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턱턱 살 구매력이 어디 있겠는가. 돈이 없으면 꽃무늬 벽지도, 다이소 그릇도 감수하는 수밖에. 남이 가전제품을 준다면, 그저 고맙다고 일단 받고 보는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적은 돈을 아껴 원하는 물건을 살만큼 확고한 취향이 있지도 않았으니, 취직을 해서 스스로 돈을 벌기 전까지 내 취향은 아주 가난했다. 오해는 마시라. 취향이 가난하다는 건 저렴한 물건만 구입한다는 뜻이 아니라, 취향이라는 토목이 하나도 들어서지 않을 만큼 내 세계가 황량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이 자란 게 아니라, 돈이 생기니 다른 선택지가 열렸다는 게 더 정확하다. 하나를 사더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사려고 한다. 아직도 운동화가 10만 원이 넘어가면 구매에 고민을 거듭하고, 옷도 5만 원 이하로 검색하여 구매하지만. 적어도 필요 없는 물건을 공짜라고 마구잡이로 받아오진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애정과 역사가 없는 물건은 오래도록 함께할 동지가 되어주지 못한다.


몇 번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비용을 치르며 앞으로는 마음에 드는 물건만 선별하여 주변에 둬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고 몸으로 대충 때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에 드지 않는 물건을 쓸 바에야 아예 쓰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 것이다. 물건의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정리가 안 된 짐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일은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옷장 속 옷은 최소한으로, 멋진 편집숍처럼 좋아하는 옷만 걸어놓으리란 다짐도 지킬 것이다. 그때는 정말 자랑하는 글을 다시 쓰도록 하겠다. 동네 사람들, 제 옷장 멋진 것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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