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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Oct 16. 2020

나는 나를 살림


본가에 살 땐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적이 없다. 과장을 좀 더하자면 그렇다. 일단은 할머니가 내 살림 실력을 못 미더워해서 그랬고, 둘째로는 엄마가 "혼자 살다 보면 집안일은 저절로 익히게 될 건데 일찍부터 고생할 필요 없다."는 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취를 시작할 무렵, 내 살림 실력은 0에 수렴했다. 밥 짓는 법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웠지만 반찬 만드는 법이나, 깨끗하게 빨래하는 법, 본질적으로는 살림의 필요성과 즐거움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요리와 청소에 서툴렀다. 

밥은 주로 편의점에서 사 먹었다. 도시락이 워낙 잘 나오니 종류별로 돌아가며 골라 먹었다. 편의점 음식에 신물이 난 이후엔 배달음식을 주구장창 먹기 시작했다. 먹는 건 어떻게 해결했지만, 청소는 더 가관이었다. 이불은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만 세탁했다. 나중엔 침대 위에서 식사도 했는데 말이다. 물걸레질은커녕 청소기도 자주 돌리지 않았다. 유리는 더러워지면 그냥 두었고, 먼지는 쌓이는 대로 방치했다. 가끔 물티슈로 보이는 곳을 닦는 게 전부였고, 화장실은 배수구에 쌓인 머리카락만 치웠다. 청소 습관이 들지 않았을뿐더러, 뭘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아서 손을 놓고 있었다.

빨래는 구깃구깃하고 눅눅한 채로 막 입고 다녔다. 색깔이나 소재를 구분하여 세탁기에 돌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한 번은 밖에서 엄마와 만났는데, 내 꾸깃한 셔츠를 보고 "너 평소에도 그러고 다니니?"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구겨진 옷을 입고 다녔다는 자각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예전엔 옷을 한 번 입고 빨래 바구니에 던져두면, 엄마가 옷을 세탁하고 다려주었다. 옷을 다려주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구깃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자존심이 상하고, 좀 부끄럽기도 했다. 그 후에는 구김이 가는 옷은 다림질해서 입고, 흰 옷은 과탄산소다에 담갔다가 손빨래를 하여 때를 빼기 시작했다. 

한 번은 집에 친구 J와 S가 놀러 온 적이 있다. 셋이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며 논 뒤, J가 설거지를 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접시만 닦고 마는 나와 달리, 그릇을 다 닦고 수세미로 싱크대까지 말끔하게 닦았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서, 이후에는 나도 J의 흉내를 내서 싱크대와 그 주변까지 수세미로 닦고, 물기를 훔쳐내기 시작했다. J의 모습을 흉내 내어 싱크대를 닦기 시작한 이후, 설거지의 의미는 확장되었다. 이젠 그릇을 닦는 것뿐 아니라, 싱크대의 물때와 가스레인지의 기름때를 닦아내고, 수도꼭지를 닦고, 그 주변을 마른행주로 물기를 훔쳐낸 다음에, 행주를 빨아 널어놓는 것까지를 설거지라고 부른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면 나는 이제 과거의 흑역사를 딛고 일어나 나름대로 깔끔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구깃구깃한 셔츠를 알아차리고 나서, 친구의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남들의 잘해 먹고 잘 사는 일상을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보면서 아주 천천히 살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다움을 찾거나, 잘 쉬거나, 잘 노는 방법처럼 살림 역시 일종의 잘 사는 공부라는 걸 알았다. 

‘살림’의 사전풀이는 '한집안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살림살이란 잘 살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다. 좁게는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부터,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하고, 건강을 챙기고 감정을 보살피는 일까지 포함한다. 어찌 보면 경영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나는 우리 집의 유일한 사장이자 직원이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것에 투자할지 결정한다. 그에 따르는 리스크도 내가 책임진다. 망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일한다.

내가 사는 공간은 하나의 생태계 같다. 몸이 피곤하고 무기력하면 바로 방이 어질러진다. 공간이 어수선하면, 나는 또 그 어수선함에 영향을 받고 만다. 공간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을 때, 내 취향에 꼭 맞는 물건으로 채워져 있을 때 좋은 기운을 받는다. 어떤 공간과 인연을 맺으면, 우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 나를 위해 먼지를 제거하고, 깨끗한 환경을 조성해준다. 아침을 여는 최적의 동선을 찾고, 좋아하는 일과 물건으로 공간을 채운다.

무력하게 누워있고만 싶을 때 집안일은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동력이다. 무료하거나 할 일이 없으면 습관처럼 집안일을 한다. 그럼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든다. 힘든 날에도 정돈된 공간과 맛있는 음식은 내 삶이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다는 안도를 준다.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가장 먼저 정리하는데, 잘 정돈된 침구를 보고 있으면 하루를 잘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긴다. 

살림은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주기도 한다. 잘 마른 수건의 감촉, 자기 전 태우는 인센스의 향, 뽀득하게 마른 컵을 정리하는 감각, 청소기를 밀며 시작하는 아침의 상쾌함. 나를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고, 가꾸는 데서 오는 기쁨은 단단하게 내 일상을 밑받침해준다. 살림의 기쁨을 찾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자립의 감각을 느낀다.

나는 나를 가장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서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이 집의 가장이라면, 내 집안을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면 나를 돌보는 일을 남에게 통째로 떠맡겨버릴 순 없지 않은가. 자유와 책임이 한 세트듯이, 독립과 살림도 짝꿍이다. 구원은 셀프, 살림도 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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