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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r 23. 2021

내가 짝사랑하는 뮤직 페스티벌

사람이 아니기에 더 사랑하는 것

사랑이 자꾸만 보고 싶고 곁에 없을 때도 생각나고, 그와 함께했던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것이라면 내가 사랑하는 건 바로 뮤직 페스티벌이다. 더 정확히는 한여름에, 야외에서 진행하고, 다 같이 소리 지르고 뛰어놀 수 있는 EDM 뮤직 페스티벌이다. 뮤직 페스티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항상 입이 근질거린다. 하지만 내 주변인은 대부분 뮤직 페스티벌에 관심이 없고, 괜히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인싸인 체한다고 여길까 봐 염려되는 마음에 입을 잘 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곳을 기회 삼아 입을 열어보고자 한다


나와 뮤직 페스티벌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18년도 여름이었다. 우리 과에는 우리보다 한 살이 많지만 학번이 같은 편입생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사교적이었기에 이른바 '인싸'처럼 인기가 많았다. 그 언니가 페스티벌에 다녀왔다며 페이스북에 사진을 몇 장 올린 적이 있다. 사진인데도 음성지원이 되는 것처럼 떠들썩한 배경과 친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언니의 모습. 인싸 대학생이라면 페스티벌쯤은 다녀와줘야 하는 걸까? 뮤직 페스티벌에 대한 나의 사랑은 선망에서 시작됐다.


친구 두 명과 의기투합하여 올여름 페스티벌에 가기로 했다. 우리가 고른 페스티벌은 바로, '월드 디제이 뮤직 페스티벌'. 이하, '월디페'다. 다만, 월디페 티켓값은 비싸도 너무 비쌌다. 일일권만 해도 1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건 학교를 다니며 주 4일 일해 70~80만 원을 버는 내게 몹시 큰 금액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술 먹을 돈을 아껴가며 티켓값을 모아, 일일권을 구매했다. 티켓이 오기 전부터 설렜다. 페스티벌을 가려면 몇 개월이 남아있었는데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디데이 어플을 띄워놓고 하루하루 꼽아가며 기다렸다. 시간은 평소보다 더디게 흘러갔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가 되었다. 16년도 월디페는 하필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됐다. 춘천에 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일행 중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지하철을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분당선, 경의 중앙선, 그리고 경춘선까지 갈아타며 머나먼 여정을 시작했다. 편도만 장장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돌아올 때는 페스티벌 측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오기로 했다. 문제는 셔틀버스가 새벽 2시에 운행을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근처 숙박업소에서 하룻밤 자고 낮에 올라오면 편했겠지만, 숙소를 잡는 게 티켓팅만큼이나 험난했고, 우리는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었기에, 숙소 예약이 아닌 튼튼한 몸뚱이를 믿는 쪽을 선택했다. 이미 티켓값으로 10만 원을 지출했기에 더 큰 지출을 할 순 없었다.


일단 춘천에 갔으니 도착하자마자 춘천 닭갈비를 먹었다. 페스티벌에 가기 전 술을 마셔서 흥을 띄우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곤, 닭갈비와 함께 막걸리도 잔뜩 마셨다. 알딸딸한 상태로 페스티벌장으로 향하니, 멀리서부터 큰 음악 소리와 쿵쿵 거리는 비트가 들려왔다. "야, 어떡해 완전 신나!"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화려하게 꾸민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인형탈을 쓴 사람, 큐빅을 얼굴에 붙인 사람, 일행과 옷을 맞춰 입은 사람 등 평소 길거리에서 보기 어려운 패션에 눈이 돌아갔다.


간단히 짐 검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글이 그럴듯해지려면, ‘처음 입장한 페스티벌은 별천지였다. 신나는 비트가 가슴을 두드리고,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무아지경에 취해있었다.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되어 비트에 몸을 맡겼다.’ 정도는 써줘야 할 텐데 말이다. 실은 첫 페스티벌이 어땠는지,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페스티벌이 열리면 아티스트의 대표곡을 예습해서 가지만, 그땐 EDM이라는 장르가 쿵쾅거리고 신난다는 것 외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가 하이라이트에 다다르면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성을 내지르며 잔디밭에서 방방 뛰었다. 춤이라고는 율동조차 잘 추지 못하지만, 노래가 하이라이트로 향해 다가갈 때 팔이라도, 아니 하다못해 머리라도 열심히 까닥거렸다.


그렇게 뛰고, 술을 마시고,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오후 2시부터 음악에 맞춰 방방 뛰고 나니 밤 10시가 접어들 무렵에는 가만히 서있을 힘도 없었다. 편도 3시간이 걸려 이동하고, 1시간 정도 술을 마시고, 나머지 7~8시간을 뙤약볕 아래에 서서 춤을 췄다고 상상해보시라. 유흥도 정도가 지나치면 노동이 된다. 셔틀버스도 공연이 끝나고서야 운행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집에 갈 수 없었다. 내 피곤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은 계속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술을 마시고, 방방 뛰고, 소리 지르며 춤췄다. 그야말로 EDM 감옥이었다. 신나기만 하던 비트가 나중에는 귀가 따갑게 느껴졌다. 나와 친구들은 견디지 못하고 이슬 젖은 잔디밭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잔디밭에 가지런히 누워 생각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었다. 사람들은 출근길 지하철을 타러 가듯 셔틀버스를 향해 우르르 달려갔다. 나도 그 행렬에 끼어서 열심히 달렸다. 셔틀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고, 강남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린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피곤할 만큼 고된 여정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아침이었다. 열심히 뛰느라 발이 욱신거렸고, 종아리는 땡땡 부어있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침대에 널브러졌다. 나와 페스티벌의 첫 만남은... 뭐랄까 한 마디로 '개고생'이었다.


그런데 왤까. 개고생을 한 후에도 자꾸 페스티벌 생각이 났다. 여름이 되자 페스티벌에 가고 싶다는 바람은 더 강렬해졌다. 그래서 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아껴 티켓을 샀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아껴보려고 중고나라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여름에도, 또 그다음 여름에도 페스티벌에 갔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돈을 아껴 티켓을 살 필요가 없었다. 이젠 아예 여름이 되기 전 티켓을 구매했다. 겨울에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됐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서 티켓을 여러 장 샀다.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그리고 스타디움 뮤직 페스티벌까지. 치밀한 라인업이 웃음이 절로 났다.


이렇게 페스티벌에 가기 전까지는 페스티벌에 가는 날을 상상하고, 다녀온 후에는 내년도 페스티벌을 기다리면서 산다. 페스티벌의 지독한 매력은 뭘까. 사랑이라면 더 복잡 미묘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노래가 신나고, 술을 마시니 재밌어서.'라는 단순한 대답밖에 내놓지 못하겠다. 다행히 얼마 전 한의원이라는 뜬금없는 공간에서 내가 페스티벌을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짐작하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체질을 파악하는 설문을 푼 적이 있다. 특이하게도 설문지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좋아하는 계절을 고르라는 문항이 있었다. 나는 사계절 중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여름엔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내가 '여름'을 고르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문항은 전부 정적인데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네요. 본인은 정적인 사람인데 동적이고 활기찬 자신에 대한 동경이 있을 수 있어요." 이럴 수가. 여기가 한의원이 아니라 점집이었던가? 딱 나였다.


페스티벌에 대한 사랑은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나'에 대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의 나와는 다르기 때문에 동경하고, 선망하는 나만의 외사랑. 그래도 괜찮다. 비겁한 말이지만 페스티벌은 나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걸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이 아닌 것은 내가 그걸 짝사랑한다고 해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일방향이어도, 영영 평행선을 달릴지라도 괜찮다. 우리 삶은 원래 짝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페스티벌을 짝사랑해볼까 한다.


올해도 페스티벌이 열리는 건 어렵겠지만, '올해는 혹시?' 하는 마음을 품고 일상을 살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기적적으로 집단 면역이 생겨서 페스티벌에 갈 수 있지 않을까? 머리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가슴은 전혀 딴생각을 한다. 불가능하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낙관적인 기대를 품게 되는 것. 어쩜 페스티벌은 그런 점마저 사랑과 닮았다. 다들 가슴속에 페스티벌 티켓 한 장쯤은 품고 사는 거잖아요?





2020년에 쓴 '인생 첫 뮤직페스티벌'이란 글을 새롭게 써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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