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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Jun 03. 2020

남자의 니트에는 로망이 있다

하지만 내겐 니트를 떠 줄 사람이 없다

어릴 적부터 '이상형의 남자'를 그리면 그는 늘 니트를 입고 있었다. 아가일 패턴의 베스트, 굵은 아란 무늬 풀오버, 손목을 살짝 덮는 얇은 가디건, 자라 무늬 목도리 등등.


취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K군을 만나고 나서도 옷가게에 들를 때마다 가디건과 풀오버를 가리키며 몇 번이나 어필을 했다. "난 저런 거 입은 사람 보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더라." 하지만 K군은 멋쩍은 웃음만 짓고는 이미 옷장에 몇 벌씩 걸려 있는 맨투맨 티셔츠(가슴팍에 무난한 의미의 영어 단어 하나만 적힌 단색 티셔츠여야 한다)나 자잘한 줄무늬 셔츠를 집어 들었다.


직접 떠 주면 입지 않을까. 바람이 서늘해질 무렵, 나는 내 목도리를 뜨다 말고 K군에게 원하는 디자인을 알려주면 목도리를 떠 주겠다고 대단한 실력자인 것마냥 말했다. 기뻐할 줄 알았는데 K군은 손사래만 쳤다.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일까,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필요 없다는 사람에게 서프라이즈랍시고 선물을 떠안기는 타입도 아니라 그해 겨울은 내 것만 뜨고 지나갔다.


몇 년이 지나고 나는 진화했다. 목도리뿐만 아니라 베스트와 풀오버, 가디건까지 뜰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한 번 K군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나, 사실 니트 안 입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K군의 옷장에 니트류가 한 벌도, 정말 단 한 벌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같이 산 지 5년이 넘었는데…) 털실이 몸에 닿을 때의 느낌이 싫어 군대에서 혹한기를 보낼 때도 목도리 한 번 두른 적이 없다고. K군의 '괜찮아'는 날 배려하는 것도, 내 실력을 못 믿어서도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다음으로 떠올린 건 아빠였다.


'엄마는 아빠한테 옷을 떠 준 적이 있을까.'


엄마의 '주 종목'은 단연 코바늘이었다. 대꼬챙이보다 얇은 레이스 바늘로 도안도 없이 식탁보며 도일리를 뚝딱 떠 냈다. 누워서 엎드려서 사부작사부작 뜬 작품들은 주로 이모들에게 돌아갔다.


대바늘을 하실 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중학생이던 내가 뜨다 질린 목도리를 집 한구석에 내팽개치면 어느샌가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엄마가 먼저 나서서 대바늘을 잡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간만에 고향집을 가니 역시나 텔레비전 앞에 뜨다 만 도일리가 놓여 있었다. 엄마는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기라도 하듯 아빠의 사진이 든 액자를 거실로 꺼내 놓았다.


"엄마는 아빠한테 옷이나 목도리 떠 준 적 있어요?"


별 기대 않고 물었는데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말을 골랐다.


"있지. 너 태어난 다음일 건데…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뜬 옷을 입히고 싶다, 그건 모든 니터의 로망인 모양이다. 엄마는 검은색 고급 실을 몇 타래나 사서 아빠를 위한 옷을 떴다. 도안은 따로 없었지만 눈대중으로 앞판과 뒤판, 소매를 떠서 풀오버를 완성했다.


도안 없이 만든 옷이 번듯했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아빠는 그 옷을 이 년 넘게 꼬박꼬박 입고 다녔다고 한다.


"와, 그 옷 지금도 있어요?"

"엄마가 버렸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아빠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엄마가 떠 준 옷을 입고 나갔다고 한다. 아내가 직접 떠 준 옷이니 얼마나 주변에 자랑하고 싶었겠는가. 자랑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 옷을 입고 나간 날마다 그렇게 술에 취해서 들어왔더랬다. 결국 참다 못한 엄마가 옷을 내다 버렸다고.


동네방네 옷을 자랑하던 아빠도, 참다 못해 옷을 버린 엄마도 너무 두 분 다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엄마의 '남자의 니트'에는 로망 대신 추억이 있었다.




북유럽 스타일 베스트를 작게 떠서 직접 입어도 봤다. 흰 셔츠에 베스트, 검은 슬랙스. 내 '이상형의 남자'와 같은 옷인데 뭔가가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떠오른 사람이 K군의 아버지였다. 마침 올해로 환갑을 맞이하신다니 손뜨개 선물을 드릴 명분도 충분하다. 180cm 넘는 훤칠한 키와 연세를 무색하게 하는 외모, K군을 떠올리게 하는 살짝 처진 눈매까지. 그래, 청키한 아란 무늬 가디건이다. 색은 역시 베이지색이지.


어느새 내 '남자의 니트'에는 로망 대신 새로 생길 가족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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