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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Jun 21. 2020

뜨개실은 줄지 않아

아카이빙 성애자의 뜨개실 정리하는 법

뜨개실을 담은 리빙박스가 꽉 차고 말았다. 체중을 실어 꽉꽉 눌러야 뚜껑이 겨우 닫힌다. 작업 중인 실은 넣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니터가 있다. 무엇을 뜰지 정하고 그에 맞는 실을 사는 타입과 실을 산 다음에 무엇을 뜰지를 고민하는 타입.


나는 전자에 해당하지만 문제는 '호기심'이었다. 인형을 뜨더라도 하나를 헤라코튼으로 떴으면 다른 하나는 러브로 떠야 직성이 풀린다. 모자도 마찬가지. 종이실인 미도리로 만든 다음에는 식물섬유실인 루이로 만들어 소재 간의 차이를 비교한다.


그러다 보니 한 줌씩 남은 실이 리빙박스를 채우기 시작했다. 사은품으로 받긴 했는데 어디다 써야 좋을지 알 수 없는 특수사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뜨개질을 오랫동안 즐겨온 분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의 콜렉션이지만, 상자 속에 어떤 실이 있는지 퍼뜩 파악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앞으로 실 종류가 더 늘어난다면 옛날에 산 실은 다른 실 사이에 짓눌려 영영 쓸 일이 없겠지.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실을 보기 좋게 정리할 수 있을까.


아카이빙이 필요한 항목은 실 이름, 색상, 소재, 굵기 정도.

실의 두께와 촉감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노션을 잘 쓰고 있지만 2번 항목 때문에 디지털 툴은 기각. 문득 떠오른 것이 원단 혹은 뜨개실 샘플북이었다.



명함 크기의 메모지에 펀치로 구멍을 뚫고 짧게 자른 뜨개실로 매듭을 지은 다음, 실 이름과 색상 등을 기입했다. 메모지를 명함북에 넣으면 비슷한 타입의 실이 추가되었을 때 자리를 옮길 수 있다.


펩몰, 귀엽긴 한데 어디다 쓰지(...)


상자 속 뜨개실은 모두 열일곱 종류였다. 목도리에서 시작해 의류, 코바늘 소품 순으로 넘어와서인지 예전에 산 실은 모사가 대부분이었고 요즘 산 실은 거진 면사나 종이실이었다. 산 지 6년도 더 넘은 뜨개실도 있었는데,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몇 년은 더 상자 속에 잠들어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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