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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Jul 10. 2020

쓸 수 없는 모자, 입을 수 없는 옷

"망했다. 또 풀어야 해?"

반쯤 작아진 실타래를 바구니에 넣었다. 종이실로 뜬 바구니는 아래가 오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입구가 동그랗게 벌어지는 모양이다. 버킷햇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아, 원래 머리에 쓰려고 만든 거니 당연한 일인가.




여름이 다가오면서 바늘에 거는 실 또한 가벼워진다. 풀오버를 뜨던 대바늘에는 가슬가슬한 린넨실을, 담요를 뜨던 코바늘에는 바스락거리는 종이실을 걸기 시작한다.


여름의 손뜨개, 하면 '모자'를 빼놓을 수 없다. 원형코에 짧은뜨기를 둘러 주기만 하면 되니 초보자도 손쉽게 도전할 수 있다.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보넷햇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가리기에 제격이다. 챙을 넓게 뜬 다음 와이어를 넣어 모양을 잡거나, 토션이나 광목천을 두르면 하늘하늘한 원피스 차림에도 안성맞춤이다.


나 역시 종이실로 버킷햇을 뜨기 시작했다. 착한 어린이가 그대로 자라 '착한 어른이'가 된 나는 영상에서 제시한 실과 바늘 굵기, 시작 콧수를 그대로 따라갔다. 초보 크로셰터인 내게 도안을 응용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감지한 건 챙을 뜨기 전 모자를 머리에 써 봤을 때였다. 의식적으로 손땀을 느슨하게 하며 뜨다 보니 머리에 비해 크게 나온 것이다. (내 머리는 결코 작지 않다)


'너무 큰가? 이 정도면 오버핏 아냐?'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뜨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 버렸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두려웠던 나는 '이 정도는 오버핏'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뜨개질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모자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훌렁 벗겨지는 통에 도무지 손이 가질 않았다. 힘들게 뜬 모자는 결국 뜨개실을 담는 바구니로 전락하고 말았다.


뜨개실 바구니로 전락한 모자.


어떻게든 모자를 갖고 싶었던 나는 코랄색 식물섬유실을 사서 다시 한 번 도전했다. 이번에는 챙이 바깥으로 살짝 말려 올라가 발랄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도안 제작자와 내 손땀이 비슷한 모양인지, 다 뜨고 나니 모자 둘레부터 챙 길이까지 도안에서 제시한 사이즈와 딱 맞아 떨어졌다.


잔뜩 들떠 모자를 머리에 쓴 순간, 나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거울 속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 장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




하나의 도안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돈을 받고 도안을 판매하는 니트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실을 골라 스와치를 내고, 각각의 사이즈에 따른 시작 콧수를 계산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을 풀었다 다시 뜨고, 다른 니터에게 테스트 니팅을 부탁한다.


이렇게 완성된 도안이 '성공 공식'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치수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작품이라면 모를까 옷이나 모자는 이야기가 다르다. 사용하는 실이 다르고, 사람마다 손땀의 크기가 다르며, 같은 S 사이즈를 입는다 하더라도 어깨 넓이부터 가슴 둘레, 원하는 핏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도안에서 제시하는 콧수와 단수를 따라 뜬다고 해서 내게 꼭 맞는 옷이나 모자가 나온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든 금방 성공 공식을 찾는다. 성공한 사람이 쓴 자기 계발서가 꾸준히 잘 팔리는 것도 '이 책대로만 하면 나도 저 자리에 오를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히 요령이 없지 않는 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에 비례해 오르는 성적처럼. 코를 빠뜨리지 않는 한 겉뜨기만 반복하면 뚝딱 완성되는 가터뜨기 목도리처럼.


하지만 자기 계발서는 '그 사람의 성공 공식'이다. 책을 쓴 저자가 효과를 봤다고 해서 무조건 내게도 마법같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건 아니다. 타인의 성공 공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의심이 날 때마다 몇 번이고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뜨개질을 하다 보면 잘 뜨던 편물을 주르륵 풀어내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니터들은 이를 '푸르시오'라고 부른다. "두 번의 푸르시오 끝에 겨우 완성했어요." 용법은 대강 이런 느낌이다. 구름 사이에서 누군가가 웅장한 목소리로 '푸르시오'라고 계시를 내리는 모습이 떠올라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살짝 미소를 짓게 된다.


무늬를 하나 빠트렸다, 소매 길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품이 더 넓었으면 좋겠다 등등. 의심나는 그 순간이 바로 뜨던 손을 멈추고 방향을 수정할 순간이다.


'더 떠 볼까. 몇 단 더 뜨면 티도 안 날 거야.'


뜨개질을 하다 보면 흔히 빠지는 유혹이다. 어쩔 수 없다. 주르륵 풀어 버리면 지금까지 들인 수고와 시간이 아까우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짧은 기장, 뜨고 보니 어딘지 모르게 촌스러운 배색, 무늬를 넣다 실수한 부분처럼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은 것, 딱 하나 때문에 힘들게 완성한 작품은 쓰이지 않고 구석으로 밀려난다.


뜨던 편물을 푼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잡아 가는 과정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타인의 성공 공식만을 따른다면? 완성된 작품을 구석에 내팽개치거나, 훨씬 먼 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둘 중 하나다.


우리는 쓸 수 없는 모자, 입을 수 없는 옷을 만들려는 게 아니니까.





실: 루이(LOUIS) 무광 살몬핑크

바늘: 코바늘 모사용 6호

도안: 유튜브 채널 '아델핸즈' 영상 링크 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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