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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Sep 13. 2020

뷔스티에 원피스가 갖고 싶어

그래서 직접 떠 봤습니다

이른 봄부터 니트 뷔스티에 원피스가 갖고 싶었다.


그 이미지는 제법 구체적이다. 어떤 색의 티셔츠에도 받쳐 입을 수 있도록 데님 느낌의 푸른색이어야 한다. 어깨끈은 얇고 밑단에는 펀칭 무늬가 들어가 단조롭지 않은 디자인.


비슷한 도안을 찾아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100% 만족할 만한 디자인은 보이지 않았다. 뷔스티에의 기장만 늘릴 수도 있지만, 무게가 확 늘어날 테니 가벼운 실로 떠야 하고 그러면 스와치부터 다시 내야 한다. 이래서야 도안을 새로 만드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손뜨개 관련 커뮤니티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도안 없이 기성 제품을 '째려보기'해서 떴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제 막 목도리의 세계에서 벗어난 나로서는 도안 없이 무언가를 뜬다는 건 지도 어플 없이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못할 건 없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다 일본 손뜨개 잡지 <케이토다마>(흔히 '모사다마'라 불리는 그것) 2020년 여름호에 실린 반팔 풀오버를 뜨면서 코늘림과 코줄임에 익숙해진 나는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 같아!'




마침 바늘이야기에서 프리마켓을 진행했다. 데님 느낌이 나는 '러블리진스(면 100%)' 실이 딱 알맞아 보였다. 배송 온 실을 보고 살짝 보랏빛이 돌지만 괜찮은 데님 컬러라고 생각했는데, 옆에 있던 K군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냥 보라색인데?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색약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쇼핑몰 상세 페이지에도 '바이올렛'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늬


원피스 밑단에 들어갈 무늬는 책 <透かし模様(비침 무늬 280)> 15번을 참고했다. 이전 글 '책장 위 이른 여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패턴집은 한 권쯤 갖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스와치


4.5mm 대바늘로 떠 봤지만 탑이 아니라 원피스다 보니 좀 더 촘촘하게 뜨는 게 낫겠다 싶어 4mm 대바늘로 변경했다. 세탁 전에는 21코 26단(10cm×10cm)이었는데 세탁하고 나니 20코 28단이 나왔다.




계산


바텀업 방식으로 만들기로 했다. 우선 갖고 있는 옷 중 원하는 핏의 옷을 골라 사이즈를 잰다.


다음은 스와치를 참고해 시작 콧수를 정한다. 밑단 길이가 50cm여야 하니 시작 콧수는 100코가 나온다. 꿰맬 때 말려 들어갈 부분을 생각해 102코로 시작하기로 했다.



몸통 길이는 단을 셀 것 없이 원하는 길이가 될 때까지 메리야스 뜨기로 쭉 떠 내려갔다. 제도라고는 1도 배운 적 없지만 유튜브 영상을 보니 암홀을 파기 위해 한번에 5~10코를 줄이더라. 눈치껏 양쪽에서 5코씩 줄였다.


어깨끈은 3코 아이코드를 두 줄 넣기로 했다. 100% 면사다 보니 제법 무게가 나가서 이렇게 하지 않았다간 끈이 어깨를 파고들 것 같아서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한 선택이었다)


102코를 둘로 나눈 다음 5코를 빼면 46코가 나온다. 이걸 6코만 남을 때까지 줄이려면 2단마다 양쪽에서 각각 1코씩 줄이기를 20번 반복(2-1-20)하면 된다.


기성복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으면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실력이 아니니 이대로 진행하는 걸로.


앞판 완성



뜨개질


밑단에만 약간 무늬가 들어갈 뿐 대부분 메리야스 뜨기다 보니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밑단 말림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밑단 코를 주워 코바늘 피코빼뜨기를 했다. 5코 간격으로 피코빼뜨기를 했는데 세탁을 하고 나니 거의 말리지 않았다.



실은 415g이 들었다. 무게가 꽤 나가다 보니 가을에 긴팔 티셔츠와 함께 입는 게 적당해 보인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옷이지만 처음부터 순전히 '내 필요'에 기반해서 만든 것이다 보니 보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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