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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Aug 12. 2021

직접 뜬 목도리를 선물한다는 것

얇고 가벼운 헤링본 무늬 머플러

10년 전이었나. 유행에 편승해 자라 무늬 목도리를 뜬 적이 있다. 뜨다 보니 지겨워져서 바인드 오프만 남겨 두고 내팽개쳤는데, 며칠 뒤 말끔하게 완성되어 있었다. (뜨개질 요정의 정체는 바로 엄마였다)


당시만 해도 울이니 아크릴이니 성분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색깔만 보고 실을 골랐다. 게다가 뜨개 기법은 실 많이 잡아먹기로 유명한 자라 무늬. 완성된 목도리는 두르고 나면 목이 뻐근해질 정도로 무거웠다.


본가에 두고 몇 년을 잊고 살았는데, 동생이 일본 유학길에 챙겨 갔더라. (엄마가 캐리어에 슬쩍 넣어 주셨을지도 모른다) '주인 없이 굴러다닐 바에는 누가 됐든 두르는 게 낫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사진 한 장을 보내 왔다. 남편이 목도리를 마음에 들어 해 자주 두른다는 것이다.


동생의 남편이니 내게는 제부(弟夫)다. 하지만 나보다 한 살이 어려 '○○ 상'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기껏 옷이며 목도리며 떠서 선물로 줬더니 쓰지도 않더라.'
'당근마켓에 실 값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놨더라.'


그런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뜨개 작품을 선물하는 것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자 니터들이 열심히 뜬 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마운 마음이 반, 미안한 마음이 반이었다. 저 목도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그동안 이것저것 뜨면서 실력도 늘었으니 제대로 된 목도리를 선물해 보자!


코트나 정장 차림에도 잘 어울리면서 가벼운 남성용 목도리 도안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펄 소호(Purl Soho)의 'Men's Mini Herringbone Scarf'다. 예쁜데 무료 도안이기까지 하다.




실은 제일모직의 '그린 알파카 울'이다. 성분은 베이비 알파카 30%에 슈퍼 워시 울 70%로, 부드러우면서 가볍다. 모자랄까 싶어 8볼을 샀는데 2볼이나 남았다. 연사된 실이라 뜨는 내내 손이 편했다.



남자 목도리는 두를 사람의 키만큼 뜨면 된다고 해서 180cm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앞뒷면 무늬가 달라 두를 때 요령이 필요하지만, TPO를 가리지 않는 무난한 목도리다.


목도리는 동생이 맡긴 책과 함께 엄마에게 부쳤다. 엄마는 반 년에 한 번, 커다란 택배 상자에 한국 라면이며 옷가지를 담아 일본으로 부치곤 하셨다. 서울에서 김해로, 김해에서 도쿄로. 목도리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고 새로운 뜨개질에 몰두할 때쯤, 잘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제부에게서도 감사한 마음을 담은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래서 직접 뜬 목도리를 선물하는구나. 다음에는 동생에게 줄 하라마키(腹巻: 털실로 짠 보온 복대)에 도전해 볼까.





실: 제일모직 그린 알파카 울 연연베이지

바늘: 대바늘 5.5mm

길이 및 무게: 183cm, 264g

도안: Purl Soho 'Men's Mini Herringbone Sc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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