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서로 닮아 간다고들 한다. 실은 닮은 사람끼리 끌리는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나와 K군은 외양부터 식성까지 닮은 구석이 전혀 없고, 몇 년을 같이 살면서도 고집스럽게 각자의 특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두 개의 책상은 서로 다른 분위기로 꾸며져 있고, 새 책을 살 때마다 ‘궁금하면 읽어 보라’며 권하지만 상대방이 그 책을 펼치는 일은 거의 없다. K군은 냉장고 속 데자와에 절대 손을 대지 않고(이건 ‘데자와’인 게 문제일지도), 내가 콘솔 게임을 즐기는 동안 K군은 PC 게임을 플레이한다. (그야 집에 플레이스테이션이 한 대뿐이니까)
책상 위에 선을 긋고는 넘어오지 말라며 윽박지르는 아이들이 떠오르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자신의 취향을 ‘영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책장과 책상, 냉장고마다 보이지 않는 선이 그인다. 문제는 ‘공기’다. 8평짜리 원룸을 둘로 나눠 각각 자신이 좋아하는 향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굳이 향수를 사 모으진 않더라도 다들 ‘좋아하는 향’은 있을 것이다. 나는 프루트 계열, 특히 시트러스 향을 좋아한다. 플로럴하거나 파우더리한 향은 거부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관련 제품을 내 돈 주고 사는 일은 없다.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페라가모의 ‘인칸토 참’. 베이스 노트가 머스크 향인 주제에 ‘청포도 향수’로 잘 알려진, 랑방 ‘메리미’에 버금가는 대중적인 향수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조말론의 ‘얼그레이 앤 큐컴버’다. 써브웨이를 갈 때마다 ‘오이랑 피클 빼 주세요’를 주문처럼 외는 주제에(오이는 물론 수박, 멜론, 참외 등 박과 식물에 약하다) ‘얼그레이 앤 큐컴버’를 좋아한다니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지만.
반면 K군은 머스크 향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K군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깨끗하게 세탁한 흰색 티셔츠에서는 페브리즈 향이 풍겼다. 페브리즈라곤 고깃집에서 뿌리는 게 다였던 나지만, K군을 감도는 페브리즈 향은 ‘자기 관리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회인이 되자마자 K군은 사실 자신은 머스크 향을 좋아한다며 ‘커밍아웃’을 하고는 더바디샵의 ‘화이트 머스크 오 드 뚜왈렛’을 샀다. 머스크 계열 향을 직접 맡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독하다며 코를 막았겠지만, K군의 살갗에서 풍기는 머스크 향은 몹시도 매력적이었다. 시향지를 코끝에 대고 맡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향처럼 느껴졌다.
이후 머스크 향은 우리 집 곳곳에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바디로션 매대 앞에서 고민하던 나는 플로랄 머스크와 파우더리 머스크 향의 바디로션을 각각 하나씩 샀고, 바디워시가 떨어지자 더바디샵의 ‘화이트 머스크 샤워젤’을 채워 넣었다. 결국에는 샴푸까지 머스크 향으로 통일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몸에서 머스크 향이 풍기는 것은 아니다. 외출하기 전 나는 늘 그렇듯 프루트 계열의 향수를 뿌리고, 향수는 샴푸나 바디로션에 비해 잔향이 오래 남으니까. 하지만 머스크 향이 감도는 집은 혼자 있는 동안에도 K군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