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군과 K양 사이

by 김세로

계기는 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이었다. 최초로 성전환(MTF) 수술을 받은 에이나르 베게너의 이야기를 각색한 <대니쉬 걸>은 에디 레드메인이 에이나르를,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에이나르의 아내인 게르다를 연기했다. 게르다는 에이나르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녀를 응원하지만, 지금까지 몰랐던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에이나르를 보면서 혼란스러움과 쓸쓸함을 느낀다.


K군과 만나기 전이었다면 에이나르의 입장에 이입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게르다의 슬픔에 공감한다.


영화를 본 나는 K군이 아닌 ‘K양’을 상상했다. 결 좋은 머리칼과 동그랗고 하얀 뺨, 부드럽고 따뜻한 손. K군의 특징을 그대로 이식한 K양은, K군을 만나기 전의 나라면 반해 버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께름칙한 진실과 맞닥뜨렸다. XY 대신 XX 염색체를 가진 K를 K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외양이나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인생은 커다란 핀볼 게임과도 같다. 가정 환경, 문화권, 교우 관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핀의 형태를 하고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레버를 세게 당기면 어느 정도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멀리 날릴 수 있지만, 언제 어떤 핀에 부딪혀 그 궤도가 바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2남 무녀 중 둘째가 아니라 1남 1녀 중 둘째인, 남고에 들어가지 않아 지금과 다른 교우관계를 구축한, 성별을 이유로 다른 전공을 선택한 K양을 K군과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K양도 사랑할 수 있을까.


“넌 만약에 내가 남자로 태어났더라도 나랑 사귀었을 거 같아?”

“아니.”


K양이라고 해서 대답은 다르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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