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로 Nov 18. 2022

노션에 냉장고 넣기

보드(Board) 뷰를 활용해 냉장고 지도 만들기

이사를 하면서 4도어 냉장고를 장만했습니다. 2도어 냉장고도 작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막상 냉장고가 커지니 마음이 푸근해지더라고요. 온라인 집들이에서 본 대로 소분용기계란 보관함이니 잔뜩 지르고는 냉장고를 깔끔하게 관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냉동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는 일 따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한 달이 지나자 냉장고는 슬금슬금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료가 집에 있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를 여닫았고 막상 요리하려고 양파며 대파를 꺼내 보면 한쪽 귀퉁이가 물러 있었습니다. 문제는 조미료입니다. 한식, 일식, 양식 등 다양한 요리에 도전하는 편인데(그 요리가 맛있는지는….) 레시피에 나오는 소스는 똑같은 걸로 갖춰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냉장고 문 안쪽이 조미료로 그득그득 들어찼습니다. 게다가 조미료는 한 번에 조금씩 쓰다 보니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반 넘게 남은 조미료를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죠. 팬트리에 보관한 향신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냉장고에 코끼리, 아니 노션에 냉장고를 넣어 보았습니다. 어느덧 석 달이 지났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쪽짜리 성공’이었습니다.



식재료를 분류하는 법


우선 위치나 유형에 관계없이 트래킹이 필요한 식재료를 전부 늘어놓습니다. 페이지 이름은 ‘냉장고 현황’이지만 실온에 둔 재료도 포함하고 있으니 ‘식재료 지도’ 쪽이 정확하겠네요. 유형(채소, 육류, 어류 등)이나 용도(메인 재료, 장류, 향신료 등)별로 나누면 어떨까 고민하다가 냉장고 ‘지도’인 만큼 위치에 따라 분류해 보았습니다.


냉장고 - 계란, 채소 등 신선도가 중요한 식재료

냉동실 - 고기, 치즈, 버터 등 장기간 보관하는 식재료

실온 - 향신료, 육수팩 등

양념&조미료

팬트리 - 통조림처럼 대량으로 쟁여 놓는 식재료

살 것


처음에는 ‘장소’에 집중해서 냉장 보관이 필요한 식재료와 조미료를 함께 관리했지만 조미료가 많은 탓에 정작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 식품에 소홀해졌습니다. 이 문제는 ‘냉장고’와 ‘양념&조미료’를 분리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중 가장 업데이트가 잦은 카테고리는 ‘냉장고’입니다. 가장 도움 되는 카테고리는 ‘양념&조미료’고요. 노션에 정리해 두니 어떤 조미료를 갖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 유자폰즈처럼 잊을 만하면 필요해지는 제품을 두 번 사는 일도 없고, 저녁 메뉴로 고민할 때도 ‘이번에는 스리라차 소스를 써 볼까’ 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각 블록에는 아래와 같은 속성을 넣습니다.



아이콘

위치

구매일

유통기한

구매 필요 여부


냉장고 지도 관리가 노동이 되면 안 되니 꼭 필요한 정보만 입력합니다. 잔량을 바나 링 형태로 보여 주는 기능도 써 보았지만, 냉장고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케찹이 얼마나 남았느냐’가 아니라 ‘케찹이 다음 요리에 쓸 수 있는 만큼 남아 있느냐’입니다. 당장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얼마나 남아 있든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된장이 반 숟갈 남았다든지 간장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할 때는 ‘구매 필요 여부’를 체크합니다. 새 것을 채운 다음 같은 블록의 유통기한을 고치고 ‘구매 필요 여부’를 비우면 끝입니다.



된장은 떨어지면 안 되는 재료니 굳이 블록을 지우지 않고 유통기한만 고칩니다. 반면 비교적 사용 빈도가 낮은 식재료, 예를 들어 땅콩버터는 어떨까요? 앞으로 영영 먹을 생각이 없다면 블록을 지우면 그만이지만 문득 탄탄멘이 당기면 다시 살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때는 언제든 활용할 수 있도록 ‘살 것’ 카테고리에 끌어다 놓습니다. 쇼핑 리스트라기 보다는 임시 보관함인 셈이죠.



유통기한? 구매일자?



식재료 관리는 유통기한을 기준으로 합니다(유통기한과 상미기한은 다르지만 말이죠). 문제는 양파나 삶은 병아리콩처럼 유통기한이 모호한 재료입니다. ‘이 때까지는 먹어야지’ 하는 날짜를 임의로 지정해 유통기한 항목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림 경력이 길지 않아 그마저 판단하기 힘들 때는 구매일자를 적어 두는 쪽이 편하겠죠.


‘노션으로 장기적인 계획 세우기’ 글에서 디데이 함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구매일자만 넣고 유통기한을 비우면 ‘D-’ 하고 불필요한 문구가 출력된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유통기한 항목이 비어 있을 때는 디데이도 출력되지 않게끔 하고 싶은데 말이죠. 이번에도 0촌 동거인의 능력을 낭비해 보았습니다(…)


if(empty(prop("유통기한")), "", concat("D-", format(dateBetween(prop("유통기한"), now(), "days") + 1)))



선택과 집중


노션으로 냉장고 지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식재료 관리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노션의 장점 중 하나가 연동성인 만큼 장을 보러 나가서도 휴대폰으로 냉장고 현황을 파악할 수 있어 중복 소비를 막을 수 있었죠. 노션 헤비 유저인 0촌 동거인에게 냉장고 지도 링크를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병에 든 음료나 조그만 간식처럼 냉장고에 들어갔다가도 금방 없어지는 종류는 매번 업데이트하기가 번거로웠습니다(그러고 보니 간식이나 우유는 유통기한을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네요).


이럴 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지요. 냉장고를 열었을 때 잘 보이는 몇 칸을 지정해서 자주 넣고 빼는 재료는 그 칸에 넣고 노션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결국 ‘장기간 보관하는 식재료 관리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네요. 어쩌면 냉장고 전체를 노션으로 관리한다는 것이 과한 욕심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칼럼으로 하는 글쓰기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