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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Aug 16. 2018

노란 준위 계급장

<자신이 맡은 일이 시시하게 느껴질 때>

이름 없는 산골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정문 초소도 산모퉁이에 숨어 있는 듯 한 아주 작은 규모의 독립 부대였다. 연병장에 도열한 전장병이라야 손으로 헤일 정도였다. 단상에 초대된 가족 친지도 몇 되진 않았다. 요란한 오색 깃발이 나부끼는 그런 식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는 가슴 뿌듯한 감동이 넘치는 인간 드라마의 현장이었다. 


 준위, 이만형, 오늘 그는 25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영광스런 전역식을 맞고 있다. 열병! 구호와 함께 부대장과 지프에 올라 천천히 연병장을 돌고 있따. 단상의 구석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는 초등 학교때 이미 조실부모한 불우한 출발이었다. 큰댁인 우리 집으로 옮겨 왔으나 여기도 초만원, 학교는커녕 먹을 것도 없었다. 조부모를 비롯해 우리 7남매, 옮겨온 4촌 남매까지 13명의 대부대 엇다. 병석에 계시는 아버지의 약값도 걱정이었지만 벌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철저한 가난이었다. 우리 9남매는 각자 제 갈길을 찾아 개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노점상, 아이스케이키, 양말공장, 만년필 장사....각개 약진이었다. 누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조차 몰랐다. 어렵고 숨가쁜 시절 이었다. 문득 생각이 나면 어늘 하늘 아래 몸만은 무사하라고 빌어 보는 것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우애의 전부 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술 하사관 시험에 합격했노라고 싱글거리며 들어온게 그의 길고도 먼 군 생활의 출발이었다. 

 그가 떠나던 아침, 어머님은 삶은 달걀 두 개에 찐 고구마를 챙겨 주셨다. 

 “녀석은 이제 굶주리진 않겠구나.”

나는 참으로 야릇한 생각을 하면서 그의 등을 밀었다. 

 “몸조심해!”

이건 그냥 헛 인사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형제에게 주어진 딱 한 가지 밑천이 ‘몸’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의 기원이 얼마나 절실했던지 일곱 머슴얘들이다. 군대 생활을 마쳤지만 손가락 하나 다친 데 없었다. 


 오늘, 사촌동생의 전역을 끝으로 우리 형제의 세대의 현역생활은 막을 내린다. 몸성히 마친 것만으로도 고맙다. 입대 한 이래 오늘 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는 군생활 이었다. 10대의 미소년으로 시작된 25년 이었다. 때론 따분하고 지겹기도 했을 것이다. 4반세기라는 긴 세월만 해도 그렇다. 더구나 화려한 지휘관도 아닌 하사관 생활이랴, 층층시하에 어느 한순간 기를 펴볼 여유도 없는 긴장의 나날들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한결 같았다. 나는 그가 어느 사석에서도 상관 흉을 보는 걸 들어 본적이었다. 자기 분수대로, 주어진 계급, 주어진 지분에 충실해 왔다. 나는 그래서 이 동생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장성의 어깨에 번쩍이는 별보다 동생의 노란 준위 계급장이 더욱 자랑스런 것이다. 

“한 젊음을 조국 수호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바쳐온 이만형 준위의 노고를 치하하며…….”

 대대장 전 호원 중령의 치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게 인사치레로 하는 치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군영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그의 부대는 그 임무로 인해 캄캄한 산골이 아닌 까마득한 산정이다. 차로 오르기에도 힘든 고지를 오르고 내리며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그의 가슴에 빛나는 무공훈장들이 이를 증명한다. 군대 생활이 어찌 편할 수가 있으리오 만 그에게만은 특히 힘든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유만만이다. 얼굴엔 언제나 잔잔한 웃음이 가득해서 생불로 알려진 우리 할아버지 같다. 

 내가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것도 이러한 그의 인품에서 비롯된다. 3년 남짓한 나의 군대 생활, 그것도 장교요 군의관으로서, 말이 군인이지 의사 생활이 전부였다. 그것도 길다고 제대날짜를 꼽아 보곤 했던 나의 군대 생활을 돌이켜 보노라면 더욱 이 동생이 존경스럽다. 

 그가 전역을 해야겠다고 나를 찾아온 날이었다. 

 “왜?”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이젠 워커구두가 너무 무거워서…….”

 그는 언제 나처럼 싱긋이 웃었다. ‘구두가 무거워?’ 전역이유치고는 참으로 엉뚱한 대꾸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의 목덜미엔 제법 주름이 깊이 잡혀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의 마흔넷 나이를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난 땀에 전 군복을 벗고, 다른 모습으로 겨레를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나를 이마큼 키워준 군에 감사를 드리며....”

 그의 답사는 끝이 흐렸다. 이제 그는 떠난다. 도열한 전우들이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군문을 나서고 있다. 이윽고 정문에 이르러 직속상관인 최성주 소령의 손목을 잡은 그의 두뺨엔 뜨거운 눈물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 멋잇는 사나이, 진짜 사나이, 이만형의 앞날에 영광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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