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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Jul 23. 2020

내 유골 백마고지에...

동아일보 2009년 9월 기재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그래, 여기쯤이었어. 포대가 이쯤 배치되어 있었고 작전 참호는 저 아래 소나무 숲…. 그 덕에 이렇게 살아 남은 거지.” 노병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 날의 참상이 떠오르는지 괴로운 듯 눈을 감는다.

지금은 경기 포천군 일동종합고등학교 운동장, 학생들 몇 명이 한가로이 공을 차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땅이 형의 포병대대가 전멸한 참극의 전장이었다니!


▼6대 종손의 참전▼

1950년 12월 31일 밤, 눈 내린 전선엔 달이 유난히도 밝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황은 시시각각 불리해지고 있었다. 대포 사거리가 자꾸 짧아지고 있었다. 5, 4, 3㎞…. 드디어 1.3㎞. 이쯤이면 바로 언덕 너머까지 적군이 밀어닥쳤다는 이야기 아닌가. 사거리가 짧아지니까 포신 각도가 낮아지고 이윽고 포탄이 산등성이를 넘지 못하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다그쳐 물었지만 보병부대로부터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 순간 포 진지에서 요란한 따발총 소리가 들린다. 중공군이 이미 완전 포위해 포 진지 뒤에서 일제 사격을 가해 온 것이다.

정신 없이 대포만 쏘느라 등뒤까지 포위된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총 한방 쏴 보지 못하고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 끝났다.

작전 참호는 포 진지와 떨어져 있었던 게 행운이었을까. 선임하사가 앞장 서 개울가로 달려갔다. 수수밭 속으로 다이빙 포복, 부러진 가지에 얼굴이 찢어졌는지 뜨끈한 게 흐른다. 아프진 않았다.

아래 마을 쪽으로 기어가는데 몇 걸음 앞서가던 국군이 따발총 사격을 받는다. 다시 방향을 돌려 개울을 건너 제방을 올라서는 데 또 따발총, 사방이 막혔다. 어디로 가야 하지. 다리에 맥이 풀린다.

그 긴박한 상황에 배는 또 왜 그리 고픈지, 생각해 보니 그 날 온종일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다.

“뭘 꾸물거려. 빨리 와! 어딘가 뚫린 데가 있을 거야. 포위망이 완전히 구축되기 전에 여기를 빠져나가야 돼. 날이 새기 전에.” 선임하사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 일단 움직여야 했다.

“그 날 밤, 우리가 어느 쪽으로 달렸을까.” 노병은 눈을 들어 멀리 남쪽 산등성이를 둘러본다. “형! 미안해!” 불쑥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밑도 끝도 없이 왜 이 말이 나왔는지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형이 힐끗 돌아보더니 “싱겁긴”하고 씁쓸하게 웃었다.

“눈감고 밤새 달렸을 거야. 의정부 들머리쯤이었을까. 설날이라고 떡국을 끓이고 있더군. 바로 뒤에 탱크가 몰려오고 있는데. 이 순박한 백성들을 두고….”

형은 조용히 그 격전의 운동장을 다독거려 밟았다.

“구천의 원혼이 되어 저 하늘을 떠돌고 있겠지. 어지러운 조국의 산하를 굽어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올려다 본 하늘가에 아이들 공 차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6·25전쟁이 나자 형은 학도병 제1기로 자원해 갔다. 세 번이나 포위를 당하고도 손가락 하나 다친 데 없이 용케 살아 남았다는 게 그저 기적만 같다.

제대 후 일자리를 찾을 수 없던 형은 일본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형님, 여기도 뿌려야겠네요.”

형은 대꾸를 안 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렇게 묻는지 형은 잘 안다. 지난번 방문 때 선산 가족 묘지에서였다.

“여기가 형님이 묻힐 자리입니다.” 형은 우리 집 6대 종손이다.

“여기 묻힌들 누가 찾아오기나 하겠어. 더구나 미국 사는 아이들이.”

“그럼 형님, 미국에 묻힐 겁니까?”

“무슨 소리?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 이 대목에서 조용한 형이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어떻게 지킨 조국인데…”▼

“화장을 해라. 유골가루 한 줌 얻어다고향 마을, 이곳 선산, 그리고 백마고지에 뿌려라.”

난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형의 그 피맺힌 사연을 나는 안다. 그래, 형, 어떻게 지켜낸 조국인데. 남의 땅에 묻힐 순 없지요.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이번 방문은 은퇴 후 처음이다. 98세 노모의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형이 갑자기 일동에 가자고 나선다.

자기 부대가 지키던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저 한 많은 1·4후퇴가 시작되었다는 일동 전장이다.

“여기까지 뿌리자면 유골가루가 한 트럭은 있어야겠다. 백마고지, 금화, 철원평야도 빼놓을 순 없지.”

오늘 처음으로 형이 웃었다. 참으로 묘한 웃음이었다. 언덕 위 충혼탑을 가리키는 형의 눈이 젖어 있었다.

이시형박사 소속 세로토닌문화 직업 강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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