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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Aug 16. 2023

터키 형제여 우린 하나가...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터키의 월드컵 예선전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우린 흥분했습니다. 그때부터 한·터 친선협회에선 응원 준비에 즐거운 부산을 떨어야 했습니다. 깃발, 현수막, 응원 티셔츠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멀리 떠난 형제가 집으로 오는 그런 설렘이었습니다.

보셨지요? 노랑 바탕의 터키 셔츠, 우린 일찍부터 그걸 입고 뽐내고 다녔습니다. 신문, 방송에도 터키 응원팀의 열기가 보도되면서 응원 지원군이 1만5000명 넘게 모여들었습니다. 셔츠 6000장이 모자라 계속 추가로 만들지 않으면 안될 만큼 즐거운 비명을 올려야 했습니다.


▼월드컵서 꽃피운 형제애▼

물론 다른 나라 응원군도 속속 생겨났지요. 그러나 터키 응원이 언제나 압권이었습니다. 거기다 관중 대부분이 터키 응원을 하는 통에 행여 상대팀 사기에 지장이 있으랴, 주최하는 주인 입장에서 걱정이 되기도 하여 오히려 자제를 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첫 시합 브라질전은 악운이었습니다. 석연치 않은 주심의 판정에 터키 형제의 심경이 얼마나 허탈했을까. 괜히 큰 죄나 지은 듯 송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훌훌 떨치고 나선 터키 전사들은 코스타리카전에서 잘도 싸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동점골, 우린 정말이지 울고 싶었습니다.

중국과의 예선 마지막. 이웃사촌이라 한국까지 가세한 중국 응원단이 수적으로 압도했습니다. 우리도 총력을 다했습니다. 남문 골대 뒤에 앉은 모든 한국인은 노랑 터키 셔츠를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습니다.

우리 응원에 보답이나 하듯 터키 전사들은 잘도 싸웠습니다. 경기가 끝난 순간, 16강 확정이란 소식에 우린 얼싸안고 춤을 추었지요. 터키 선수들이 우리 앞으로 달려와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응원석에선 감동과 환희로 넘쳐났습니다. 그리곤 스탠드 뒤에서 만난 터키에서 온 응원팀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마음껏 춤도 추었습니다.

그날 밤 식당을 통째로 빌려 터키 16강 진출 축하 파티를 열었지요. 우린 정말이지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그 무렵 한국도 승승장구 16강 고지를 밟았습니다. 꿈만 같았습니다. 터키팀이 일본으로 떠나던 날, ‘결승에서 만나요!’ 우린 이렇게 빌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 터키팀은 파죽지세, 이윽고 4강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세계 언론은 두 팀의 승리를 기적이라고들 극찬했습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놀랐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행진은 거기서 멈춰야 했습니다. 그리곤 우리 형제 팀의 3, 4위전이 대구에서 열리게 되었지요. 한국의 신문, 방송은 ‘형제의 나라’ 터키와의 우의를 다지는 친선이 되도록 하자고들 다짐하는 보도가 나가고, 한국인 역시 그러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대구 시내에는 ‘터키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관중의 손에도 두 나라 깃발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양팀 선수들 역시 두 나라 국기를 들고 등장하자 스탠드에는 환호와 박수가 천지를 진동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이 이겼으면’ 하는 생각이 왜들 없겠습니까만 터키팀의 선전에도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윽고 종료 휘슬, 양팀 선수는 약속이나 한 듯 어깨동무를 하고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형제의 우의를 세계 만방에 과시했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한국인의 그 넉넉한 심성에 놀랐다고 합니다.

다음날, 우리는 한국에 있는 모든 터키 형제들을 초청해 신나는 뒤풀이를 했습니다. 서로 축하하고 감사하면서 우리는 형제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멋진 한판이었습니다.


▼˝소중한 우의 간직합시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즈음, 터키팀 주장 하칸 슈퀴르와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3, 4위전을 치른 후 대구운동장을 빠져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관중까지 축하, 박수, 포옹하는 그 뜨거운 우의에 어린애처럼 울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내는 떠나갈 듯 공감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터키 형제들 정말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간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살기에 쫓겨 우방 형제에게 감사 인사도 미처 못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코 잊진 않았다는 건 지난번 터키 지진 때 거국적인 성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의 뜨거운 응원 역시 우정과 감사의 발로였습니다. 이 소중한 우의를 고이 간직하고 더욱 돈독히 해야겠습니다. 앞으로 한·터 정기 축구전도 건의할 생각입니다. 우리 두 팀이 언젠가 월드컵 결승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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