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허리 5cm냐?
허리 5cm에 당신의 운명이 달려있다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젊다는 증거다. 축하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1년에 조금씩 나도 모르게 체중이 불어난다. 건강엔 자신 있다는 사람도 어느 날 ‘응?’ 과체중 환자가 된다. 나이가 들어 걸리는 소위 생활습관병은 일차적으로 거의 비만에서 시작된다. 폭음, 폭식, 운동 부족 등 잘 먹고 편해지면 으레 비만이라는 병을 선물로 치르게 된다. 우리는 아직 나이 든 사람의 고충을 잘 모른다. 우리 역사상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인은 고령화에 대한 준비도 없다. 돈도 없고 참으로 서러운 사람이다. 거기다 아프기까지 해보라. 비참한 인생이 된다. 연극도 영화도 끝이 좋아야 명작이 된다. 인생이라고 어찌 다르랴.
지금 우리의 평균 수명은 83세지만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 수명은 겨우 70대 초반이다. 통계적으로 본다면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병을 앓다 생을 마감한다는 뜻이다. 해서 난 이 시기를 ‘장수의 늪’이라고 명명했다. 장수가 만들어 놓은 이 질퍽한 늪을 넘어지지 않고 잘 건너야 한다. 장수가 축복이 될 것인가, 재앙이 될 것인가는 여기서 판가름 난다. 여러분이 길에서 만나는 건 강한 고령자는 장수가 축복이 된 행운아다. 보라. 꾸부정한 허리, 느릿한 걸음이지만 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
비만은 비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생활습관병이 함께 따라온다. 특히 당뇨병은 그 자체만으로 불편하지만, 그보다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심지어 발을 절단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늙어서 중증 비만인, 그리고 중증 야윈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성인들은 별문제 없으면 90대까지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당신에게 장수의 늪이 되어 힘든 시기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지금도 고령자의 건강보험료는 국민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건강식품, 영양제, 요양비 등등…. 돈이 상당히 많이 든다. 돈이 없으면 아프지도, 늙지도 말아야 한다. 개인의 평소 생활의 부주의로 본인도, 가족도, 나라도 망조가 든다.
의사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환자들의 비만에 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어려운 다이어트를 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과체중보다 더 힘든 경우도 더러 보아왔다. 어떤 노력도 다이어트 앞에 무력함을 느낄 때 잘살아 보겠다고 그렇게 노력한 지난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세상을 둘러보면 우리만큼 편리하고 잘 사는 나라는 잘 없다. 그게 문제가 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달리 없다. 많은 다이어트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성공도 힘들지만 그걸 유지하는 것은 더 힘들다. 시중엔 지금도 온갖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Rebound가 없었다는 보고는 그리 많지 않다. 좀 지겨운 소리긴 하지만 평소 생활을 잘 다듬어야 하는 예방이 최선이다.
왜 하필 허리 5cm냐? 본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리는 비만에 관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비만하면 혈압도 높을 것이고 심장도 나쁠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만=악(惡)이라는 아주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본서를 읽어 가노라면 가끔 깜짝 놀라 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우리 생각이나 상식과는 영 동떨어진, 전혀 반대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기엔 의사인 내 자신도 힘겨울 때도 있는데 하물며 일반 독자들에겐 참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가장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비만 PARADOX’, 비만해야 건강, 장수 한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처음 이런 논문을 접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는 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본서에선 주로 비만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될 것이다. 비만의 역사다. 그러나 숨겨진 저의, 본심은 건강에 있다.
비만의 역설 만큼이나 놀라게 되는 건 또 있다. 저체중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과도한 비만인 경우를 제외하고 저체중자가 비만자보다 사망 위험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한 데도 저체중이 비만에 가려 사회문제화 된 적은 아직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국내 처음으로 ‘살찌는 클리닉’을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