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연결을 묻다.
이 칼럼 시리즈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가 자신의 유년 시절과 가족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고독, 외로움, 관계의 단절, 독립의 역설을 성찰합니다. 과거의 체험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연결과 연대의 의미를 모색하며 고독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질문을 던집니다.
내게는 친구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죽고 못 사는 절친한 친구가 셋 있었다. 하루만 못 봐도 죽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정말로 그렇게 친한 사이였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거의 10년 넘게 함께 다닌 친구들이었다.
의과대학은 들어가기도 어려웠지만, 다니는 과정도 정말 힘들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건 시험이 많다는 것이었다. 의과대학은 시험으로 시작해서 시험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사의 평생이 시험으로 점수를 매기며 살아가는 삶이다. 의사국가시험, 졸업시험, 인턴시험, 수련의 과정에서 치르는 시험들, 수련의가 끝나면 또 전문의 시험, 그것이 끝나면 운전면허시험까지.
시험만 다가오면 나는 늘 벼락치기를 하느라 분주했다. 아르바이트로 수업도 제대로 들을 틈이 없었다. 시험 공부할 시간조차 빠듯했다. 그럴 때마다 내 절친한 친구 세 사람이 마치 가정 교사처럼 나를 가르치고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시험 기간만 되면 꼭 모여서 공부했다. 나는 늘 아르바이트 때문에 통금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뛰어오곤 했다. 친구들은 이미 공부를 마치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나를 위해 서로 교대를 서듯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한 친구는 내과를, 또 한 친구는 소아과를, 다른 한 친구는 외과를 돌아가며 나를 도와주었다. 이 친구들이 없었으면 나는 의과대학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졸업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 매일같이 만나야 하는 그런 사이였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졸업하고 나서는 각자 전문과목이 달라지고 길도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얼굴을 봤다. 완전히 뿔뿔이 흩어진 건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였다. 유학을 마치고 잠시 함께 있었지만, 다시 나는 서울로 올라왔고 그때부터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래도 대구가 고향이라 강의를 가거나 집안의 대소사로 내려갈 때면 늘 이 친구들부터 먼저 찾았다. 정말 이 친구들이 없으면 나는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떠난 친구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토록 죽고 못 살던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나는 적막감이나 상실감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두 번째 친구가 떠나고, 세 번째 친구가 작년 가을에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런 내 마음이 의아했다. 내가 그토록 우정을 나눴던 깊이가 고작 이것뿐이었나. 친구가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절실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내 양심을 괴롭혔다. 그렇게 매정하고 야속한 내 자신이 밉기까지 했다. 그렇게 친한 친구가 다시는 못 볼 저승으로 떠났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자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초상집에 가면 처음에는 울적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막상 문상을 가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하고, 농담도 하면서 금세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곤 했다. 심지어는 죽은 친구의 흉내도 보고, 그 친구의 실수담을 이야기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곤 했다. 나는 그 분위기가 참 이상했다. 친구가 죽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떠들썩할 수 있을까. 이제는 영영 못 만날 텐데, 왜 그렇게 절실한 이별의 느낌이 없을까.
그러면서도 생각해보니, 죽음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익숙해져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친구들은 죽어도 결코 죽지 않는 것,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외롭거나 서럽지도 않았다.
얼마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친구 셋과 나, 네 명이 함께 찍은 졸업식 사진을 발견했다. 엄마 네 분을 앞에 모시고, 우리 넷이서 뒤에 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며 정말 많이 울었다. 그 사진을 확대해 액자로 만들어 친구들 자녀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때는 또 그렇게 눈물이 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평상시처럼 돌아가는 나를 발견한다. 혹시 내가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가 떠난 뒤, 대구 하늘이 유난히 허전하고 적적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니 그 마음도 조금씩 옅어졌다. 마음 한켠에는 "언제든 전화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물론, 그 친구들의 목소리며 표정, 제스처까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다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절실함은 예전만큼 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언젠가부터인가 죽음에 익숙해져버린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 친구들은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일까.
이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종교적인 믿음이 아주 깊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서인지 아직도 친구들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그 친구들은 떠나갔지만, 결코 떠나지 않은 존재로 내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그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